이순(李珣) 장군과 아름다운 쾌재정을 추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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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李珣) 장군과 아름다운 쾌재정을 추억하다
  • 공대원 시민기자
  • 승인 2020.09.08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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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사천의 역사와 문화 이야기: 쾌재정(快哉亭)

공민왕 시절에 최영․이성계와 이름 나란히

1367년 신돈에 의해 사천으로 유배 와

쾌재정에서 노래한 퇴계 이황과 구암 이정

쾌재정(快哉亭)이 있던 축동면 구호리 563-1번지 일원. 가까이로 남해고속도로가 지나고 그 너머로 사천공항과 와룡산이 보인다.
쾌재정(快哉亭)이 있던 축동면 구호리 563-1번지 일원. 가까이로 남해고속도로가 지나고 그 너머로 사천공항과 와룡산이 보인다.

중요무형문화재 제73호 가산오광대는 축동면 가산마을에서 내려오는 민속놀이로 조창오광대라고도 불리었다. 이유는 가산리에 가산창이라는 조창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가산마을에 있던 조창은 원래 축동면 구호마을에 있었던 장암창이 옮겨와 가산창이 되었다. 장암창은 현재 흔적마저 지워지고 역사서 한 귀퉁이에 기록으로만 남아있다.

지금은 사라진 장암창과 장암나루가 바라보이는 언덕 위에 고려시대 충신 이순(李珣) 장군이 지은 쾌재정이 있었다.

쾌재정 터.
쾌재정 터.

이순 장군은 1359년(공민왕 8년) 홍건적이 침입했을 때 대장군이 되어 적을 물리쳤다. 1361년에는 홍건적의 위평장(僞平章)·반성(潘誠) 등이 20만 병력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경성(京城: 개성)을 침입해올 때 예부상서로서 태주(泰州)에서 적을 격퇴하였고, 1362년 밀직사로서 서북면도병마사에 올랐다.

이어 1363년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로서 양광도도순문사(楊廣道都巡問使)가 되었으며, 이전에 홍건적을 물리친 공으로 기해격주일등공신(己亥擊走一等功臣)에, 또 경성을 수복한 공을 인정받아 수복경성일등공신(收復京城一等功臣)에 서훈되었다.

또, 이 해에 적신(賊臣) 최유(崔濡)가 충선왕의 셋째 아들인 덕흥군(德興君)을 받들고 침입한다는 보고에 도체찰사로서 이성(泥城: 지금의 평안북도 昌城)에 주둔하고 서북면을 방비하였다.

1364년 최유가 압록강을 건너 1만의 병력으로 침입해오자, 최영(崔瑩)·이성계(李成桂)·우제(禹磾) 등과 함께 이를 격파하였다. 1365년 판개성부사에 서용되었고, 이듬해 강화도 교동(喬桐)에 왜구가 침입하자 이를 격퇴했다.

평리(評理)를 거쳐 1367년 신돈(辛旽)에 의하여 사천에 유배되었다가, 1371년 신돈이 처형되자 귀양지에서 소환되어 삼사좌사(三司左使)에 제수되었다. 이어 안주상만호가 되어 서경도만호 안우경(安遇慶)과 함께 원나라의 오로산성(五老山城)을 정벌하였다. 시호는 평간(平簡)이다.

1367년 사천으로 유배 온 이순 장군은 포구를 오가는 세미선(稅米船)이 바라보이는 이곳에 쾌재정을 짓고 아호정사라 불렀다. 이 쾌재정은 조선시대 남명(南冥) 선생과 퇴계(退溪) 선생 등 많은 시객들이 음풍농월하던 곳이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당시 파손되었으며, 이후에 새롭게 중건하진 않았다. 얼마 전까지 축동초등학교 구호분교가 있었으나 그마저 흔적 없이 사라졌다. 이제 세월 묻은 노목 한 그루와 편액 몇 점이 구호마을에 남아있어 아쉬움을 더한다. 특히 장암포구는 중선포천을 끼고 있던 큰 포구였으나 지금은 남해고속도로 건설로 인해 정확한 위치조차 파악하기 어려우며 사천공항 건설에 따른 유량의 변화로 포구로서의 모습마저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쾌재정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구암 이정 선생의 시와 곤양군수를 역임한 관포 어득강의 시가 있어 이곳에 전해 본다.

쾌재정이 있던 곳에 선 나무.
쾌재정이 있던 곳에 선 나무.

구암(龜巖) 이정(李楨)의 ‘쾌재정(快哉亭)’

바다의 해는 어리둥절 날 저물려 하는데 / 배 한 척 외롭게 사천바닷가에 쉬고 있네 / 쾌재정에 올라 고개 들어 쳐다보니 / 코앞의 와룡산이 석양에 물들었네

(海日茫茫欲暮天 孤舟初泊泗溪邊 快哉亭上重回首 咫尺龍山隔晩烟)

관포(灌圃) 어득강(魚得江)의 ‘쾌재정(快哉亭) 팔영(八詠)’ 중 일부

맑은 사수(泗水)가 동쪽에서 호수로 쏟아지니 / 긴 포구에 시원한 바람이 무밭을 뒤흔드네 / 누가 호숫가의 정자 주인을 겸했는가 / 바다고기, 육지 채소 날마다 드리우나

(淸泗從東直瀉湖 長浦白練破菁蕪 兼幷誰似湖亭主 日日陳魚海陸俱)

삼천포 바다 밖에 배 한척 외롭구요 / 십수교 다리가에 돛대가 숲을 이루었네 / 밤마다 장삿배가 창문 아래를 지나다가 / 주인이 타는 거문고 소리 노 멈추고 귀 기울이네

(三千浦外船如葉 十水橋邊檣似林 夜夜買船銹下過 停橈應聽主人琴)

남해의 마파람이 호수까지 불어오니 / 강주에 섬이 잠겨 탄환(彈丸)처럼 보이누나짙고 높은 상투는 흥선(興善) 으로 보이구요 / 아담하게 닦은 아미 여기가 금산이네요

(南海長風捲湖至 江洲島沒一彈丸 濃如高髮爲興善 淡似脩眉是錦山)

백척(百尺) 높이 성루에 오르니 여기가 사천성이네 / 때때로 바람 따라 뿔피리 소리 들려 오네겨울 기러기 가고파도 날아가지 못하지만 / 갈매기 제 먼저 알고 인기척도 소용 없네

(戌樓百尺泗川城 風送時時晝角聲 寒雁欲征飛不渡 沙鷗己慣聽無驚)

와룡산 물총새가 강을 건너 날아와서 / 옛 둥지 귀룡동(歸龍洞)을 몇 번이나 찾았던가 / 일찌기 여조(麗朝)때는 풍패(豊沛)지라 여겼더니 / 천년 지난 지금도 아직 패기(覇氣)는 살아 곱기만 하네

(龍山飛翠渡江來 訪古歸龍洞幾回 曾是麗朝豊沛地 千年王氣尙佳哉)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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