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테넷'

'테넷' 포스터.
'테넷' 포스터.

<테넷>의 헤드카피가 ‘이해하지 말고 느껴라.’다. 이 문장을 재해석하면 ‘어차피 이해하는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하지만 재미있으니 그대로 느껴라.’ 정도인데 무슨 영화가 대놓고 카피부터 사람을 혼란에 빠뜨린다. ‘크리스토퍼 놀란’이니까 가능한 배포다. 

연예인들의 연예인만 있는 게 아니다. 감독들의 감독, 영화인들의 영화인 하면 떠오르는 거장들은 꽤 된다. 그중 크리스토퍼 놀란은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점에서 신작을 내놓을 때마다 남다른 시선이 꽂힌다. 호평이건 악평이건 주목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놀란의 신작 <테넷>은 한마디로 벅차다. ‘엔트로피’나 시간의 역행과 관련된 ‘인버전’ 등의 개념을 이해하고 말고는 별개의 문제로 난해하고 불친절하다. 영화의 리듬감도 그렇고 서사의 진행도 빠르다. <테넷>의 시간은 뒤엉키고 섞인다. 시간을 구별하려고 하면 흐름을 놓친다. 그런데 애초에 흐름이라는 게 있었던가. 내가 흐름은 제대로 보고 있는가. 초판이 살짝 지나면 영화의 메인 카피가 다시 떠오른다. ‘이해하지 말고 느껴라.’

이해와 분석을 포기하면 마음은 한결 가볍지만 혼란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다만 느슨해진 신경세포 탓인지 이해를 포기하니 스펙터클한 영화의 스케일이 눈에 들어온다. 음악은 규모에 걸맞게 장대하고 강렬하며 액션 또한 섬세하고 짜릿하다. 크리스토퍼 놀란이 펼쳐놓은 방대한 설계도를 분석할 순 없지만 블록버스터로서의 미덕 또한 충분하기에 두 시간이 넘는 긴 러닝타임에도 지루할 틈은 없다. 영화를 본 후 N차 관람의 욕구가 생기는 까닭은 이해하기 위해서라기보다 ‘뭔가 대단한 것’을 다시 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기도 하다. 

장르적 쾌감은 크다고 할 수 없지만 뭔가 웅장하고 거대한 굉장한 것을 보았다는 느낌은 정말 선명하다. 한 천재의 날카롭고 섬세하게 설계된 과학적이며 지적인 모험-크리스토퍼 놀란 유니버스라는 회전문에 동승한 느낌이다. 늘 강변하지만 이렇게 스케일이 큰 영화는 커다란 화면으로 봐야만 한다. 

참고로 스포일러 걱정은 안 해도 된다. 무얼 스포해야 할 지 모르기도 하지만, 설령 스포를 할지라도 보지 않고서는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어서 빨리 극장에 가라고 권유하고 싶지만, 시절이 하 수상해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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