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맛으로 영혼이 부르다 (4) - 버스 차장의 서글픈 자화상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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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맛으로 영혼이 부르다 (4) - 버스 차장의 서글픈 자화상 ①
  • 송창섭 시인
  • 승인 2020.08.25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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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섭 시인
송창섭 시인

1970년 대까지만 해도 시내버스에는 버스 안내원 또는 차장이라 불리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로 여성이었지요. 차표 또는 찻삯을 받거나 차의 출발, 정지를 운전기사에게 알리고, 손님들의 승하차를 도우면서 차문을 안전하게 여닫는 노동을 했지요. 손가락을 자른 때묻은 장갑이며, 목을 두른 하얀 옷깃 달린 정복, 그리고 빵모자를 쓴 시내버스 차장 차림새가 선명히 기억납니다. 

터져나갈 정도로 가득 메운 손님들과 버스 엔진 소리에 행여 못 들을까 봐 “도오 도, 워어이 워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고함을 지르던 모습은 아련해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도오 도”는 ‘멈춰라, 정지하라, 세워라’는 뜻으로 생선 비늘 치듯 영어 스톱stop을 짧게 간추린 표현(스톱〉스돕〉돕〉도오〉도)이고, “워어이 워이”는 떠나라, 출발해도 좋다는 말로 영어 올라잇all right을 오라이로, 이를 더 줄여 워이로 썼던 것이지요. 이만하면 콩글리시Konglish를 대표하는 말로 손색없을 겁니다.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외버스 안내원(안내양)은 키가 조금은 큰 편이었고 치마를 입고 모자를 쓰는 등 단정한 제복을 착용했습니다. 가끔 촌로들이 큰소리로 “차장, 차장” 소리쳐 부르긴 했지만, 대부분의 시외버스 손님들은 안내원이란 호칭을 더 많이 써서 은근히 차별성을 두거나 대우를 조금은 달리 한 것으로 보입니다. 

1985년 풀빛판화시선으로 나온 최명자 시집 『우리들 소원』에 실린 작품입니다. 

난 어차피 쌍년이고 개 같은 년이며 / 못 배운 차장년이다 / 이왕 씹어 먹는 김에 / 나도 할 말 좀 하여야겠으니 / 새겨서 듣고 먹어 봐라 인간들아 / 대학 나와 펜대 잡고 뭣 좀 안다 떠드는 놈들 / 그래 뭘 그리 많이 알아 이루었고 / 어떻게 배워 행동하였기에 / 나라꼴은 요 모양이고 / 민중은 일에 허기에 시달리느냐 / 세상 돌아가는 꼴 눈으로 보고 들으면서 / 당장 코앞이 두려워 / 부정부패 쌓이고 널려져도 / 눈감아 버리는 양심 썩은 공무원들아 / 뿌리를 찾아 주체성 좀 살리면 / 너 좋고 나 좋아 세상 살기 좋을 텐데 / 세금 낸 돈 입에 풀칠하기가 미안하지도 않더냐 / 천하에 무식하고 제 형제 핏줄도 모르는 / 노동자 농민 쌍놈의 자식들아 / 어차피 너나 나나 종살이 / 없는 살림 힘에 겨운데 / 서로 돕고 밀어주지는 못할망정 / 꼴에 꼴 같지 않은 것들이 사람 무시하는 것만 배워 / 차장 무시하고 반말 지껄이고 내려보는 이유가 무엇이냐!        - 「내친김에 쏟아 놓으리니」

그러니까 무려 35년 전에 쓴 시이지요. 경악스럽지 않습니까. 차장이 없는 거 말고 달라진 게 뭐가 있을까요. 갑질하고 죽임말-사람을 죽음으로 내몬 험한 말, 살해어殺害語-을 함부로 내뱉고 오히려 더 심해진 건 아닌지요.  

저는 중고등학생 시절 멀리 떨어진 학교에 가기 위해서 으레 시내버스를 이용했습니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일반인들과 동선이 겹쳐서 버스 정류장에는 차를 타려는 사람들로 항상 붐볐고 한바탕 전쟁을 치렀습니다. 멀리서 달려온 차가 앞쪽 아니면 뒤쪽 어디 서느냐에 따라 사람들은 너울성 파도처럼 이리저리 크게 휩쓸리곤 했지요. 

시내버스는 두 종류가 있었습니다. 출입문이 약간 앞쪽으로 하나 있는 건 좌석 버슨데 학생 버스비가 12원, 문이 앞뒤로 둘 있는 건 입석 버스로 학생 차비가 6원이었습니다. 용돈이 부족하면 곧잘 6원마저 털어먹고는 서면까지 30분을 걸어가서 입석을 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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