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운타 마소. 20×15. 2020.
서운타 마소. 20×15. 2020.

그 집 앞을 지나간다. 기억이 조금 희미해져 버렸지만 한때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었다. 아직 채 꺼지지 않은 불빛을 보면서 이젠 누구와 또 어떤 일상을 나누고 있을까. 차를 멈추어 들어가 볼까 하다가도 한참 동안 뻔한 안부 인사를 주고받을 것이고,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나 들어오게 된 마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매번 그렇게 그냥 지나쳐 왔다. 

카톡 대문 사진들을 올려본다. 자기 얼굴에 카메라 초점을 맞춰가며 행복해하는 그녀가 있었고, 늘 혼자일 것만 같았던 사색가 남자는 가족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여행지에서 가장 행복한 찰나를 보냈을 친구가 보이고, 꽃을 좋아하던 그녀는 여전히 꽃 속에 파묻혀 소녀같이 먼 산을 바라본다. 간혹 여전히 바뀌지 않는 대문 사진을 보면서 저도 나처럼 바쁘게 살고 있을 거라 여겼다. 

시절인연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많은 인연들을 만났다. 아이를 키울 때는 함께 유모차를 끌던 친구가 곁에 있었고, 아이의 학교를 함께 오가며 수다스럽던 시절의 엄마들도 있었다. 공부할 때는 서울로 오르내리며 일상의 반을 함께 나누던 동문들이 있었고, 이후 서예가로 성장해 나가면서 수많은 인연들이 만나게 되었다. 제자라는 이름으로, 선생이라는 이름으로, 이웃이라는 이름으로, 지인이라는 이름으로 살게 되었다. 높기도 해 나를 긴장하게 했고, 낮기도 하여 측은해하며 서로 사랑했다. 많기도 해 도움을 받기도 하고, 적어 오히려 내가 도움을 주었던 인연도 있었다. 우울로 고생하던 그를 의리랍시고 넷이서 일 년 남짓 새벽까지 지켜 준 적도 있었다. 그 인연 값으로 젊은 나이에 집을 짓게 되었고, 그도 안정을 되찾아 이젠 다른 사람들과의 잦은 교류가 소문으로 들려온다. 인연을 주고받으며 어른이 되었다.

인연을 엮으며 살아내다 보니 어떤 인연은 뜸해져 버리기도 하고 어떤 인연은 잊어져 버린다. 그러다 가끔 화들짝 놀란 마음에 다시 찾게 되면 그때 나는 그다지 즐겁지가 않았다. 요즈음을 설명하는 동안 진이 다 빠져 버렸다. 그래서 시절인연이라 여겼다. 내 과거를 함께 나눈 시절인연들과 많은 시절을 보낸 것 같다. 많이 주기도 하고 받기도 했다. 사랑할 뻔도 했고 미워할 뻔도 했다. 

그 시절의 인연들은 여전히 열심히 살아내고 있었고, 우리는 각자가 다시 새로운 시절인연들을 만나고 있었다. 시절인연은 한때의 빚이었다.

“서운타 하지 마소. 가슴속에는 여전히 우리들이 있잖소. 당신들이 내 역사잖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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