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파리의 인어'

'파리의 인어' 포스터.
'파리의 인어' 포스터.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을 보여주는 판타지 멜로를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이가 있는 반면에 ‘개연성’ 없는 동화 같은 이야기라고 치부해버리기도 한다. 사실 ‘개연성 없는 동화’로 관객을 설득하는 비결이 바로 현실을 잊게 하는 판타지적 상상력이다. 기존의 동화에 보통의 상상을 뛰어넘는 재기 발랄함이 더해지면 영화는 평범한 동화 복제를 넘어 자기만의 장르를 갖는다. 그게 영화적 소구력이다. 

그런 의미에서 <파리의 인어>는 관객을 확 끌어당기는 자기만의 상상력을 보여주지 못한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에 연출 또한 뻔하다. 그저 동화의 매력을 더 부각시키는 화면 연출과 달콤한 OST로 관객의 1차적 관심만 붙들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고 나면 망작을 본 뒤의 허탈감은 들지 않는다. 아이러니 같지만 그게 바로 낭만적인 동화의 힘이다. 마티아스 말지우 감독은 자기만의 상상력을 보태는 대신 동화가 가진 낭만성을 극대화했다. 

심장이 없다고 믿는 남자 ‘가스파르’와 아름다운 노래로 심장을 빼앗는 세상의 마지막 인어 ‘룰라’가 낭만의 도시 파리에서 우연히 만난다.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고 믿는 남자와 사랑에 빠지지 않아서 기쁘다고 말하는 여자, 보통의 스토리라면 이 두 남녀의 닿을 듯 말 듯 한 감정의 변화에 집중해서 멜로를 강화시키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파리의 인어>는 두 사람의 멜로적 긴장감을 따라가는 대신 형형색색 아름다운 색채로 가득한 미장센(심지어 목욕신에서 등장하는 팝업북의 색감도 눈을 매혹시킬 만큼 화려하다)에 집중한다. 

또한 수초 같은 머리카락과 물빛 눈동자로 화면을 가득 채우는 인어 룰라는 <스플래쉬>의 대릴 한나가 최고라는 믿음을 무너뜨릴 만큼 적역이다. 빛나는 에펠탑을 포함한 파리의 야경은 여행길이 막힌 이 시국에 눈요깃거리로 충분하며, 마음을 내려놓고 영화를 따라 흘러가다 보면 예쁜 그림책 한 권을 깔끔하게 읽은 느낌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은 아름다운 여느 동화가 그러하듯 따뜻한 여운이 남는다. 

파리라는 도시가 주는 낭만성을 바탕으로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오른 <미드나잇 인 파리>, <비포선셋>같은 영화적 미덕과 대중적 감수성을 고루 갖춘 영화는 아니지만, <파리의 인어>는 그만의 매력으로 충만하다. 따뜻하고 서정적인 색감과 어우러지는 단순하고 명징한 사랑 이야기는 여름밤 청량감을 주기에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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