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박물관은 살아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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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박물관은 살아 있어야 한다
  • 이용호(사천시 향촌동)
  • 승인 2020.06.23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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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호(사천시 향촌동)
이용호(사천시 향촌동)

신복리 골짜기 입구엔 기품 쩡쩡한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보호수로 관리되고 있는 이 나무는 수령이 350여 년을 넘긴 고목으로 햇살이 비칠 때 가지마다 붉은빛을 발하여 몽환의 경지를 연출한다. 그래서인지 누구라도 지근에서 바라보면 고고하면서도 인자한 선비의 기상을 엿볼 수 있다. 소문을 듣고 찾아간 날, 초여름 햇살이 영롱하게 내려앉은 소나무 아래를 둘러보던 차에 멀리서 총총걸음으로 뛰어오시는 촌로를 발견했다.

교육박물관의 주인이신 박연묵 선생이었다. 무언가 꼭 전해 주고 싶은 말이 있는 사람처럼 다가오신 선생은 어디서 온 누구인지 묻지도 않은 채 단도직입적으로 소나무 예찬에 돌입하셨다. 전국의 나무 박사들이 이 나무의 명성을 듣고 찾아와 신묘함을 찬양했는데, 그때 선생은 이 나무에 대한 철학과 애착을 설파했다고 한다. 나무를 보호한답시고 둘레를 조경하고 데크를 덧대는가 하면 어설픈 안내판까지 세워 나무 고유의 풍취와 가치를 망친다고 하시며, 최대한 습생을 건드리지 말고 원형을 보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씀이셨다. 박물관을 구경도 하기 전에 일행은 벌써 선생의 가치관과 철학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레 선생의 발길에 끌려 박연묵 교육박물관 속으로 들어갔다. 여러 해 전 이곳을 처음 찾아보곤 방치된 소중한 자료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활용의 필요성을 실감한 나로선, 여전히 초라하게 기울고 있는 박물관의 모습이 안타깝게 밟혀왔다. 

선생의 집을 중심으로 마당 사면엔 교직생활에서 모아둔 각종 학교, 교육 기록물들과 농기구는 물론 사진, 재봉틀을 비롯한 추억의 생활 골동품까지 차곡차곡 박제된 동물처럼 잠들어 있었다. 마치 유년의 공간 속으로 들어온 듯, 금방이라도 내게 말을 건네주듯 정감이 묻어났고 선생의 열정이 넘쳐흘렀다. 그러나 그 교육적 가치와 사연 깃든 소품들이 비좁은 골방에서 제대로 관리도 받지 못한 채 쾌쾌한 냄새로 얼룩져 가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했다.

숲과 꽃으로 뒤덮인 뒷동산은 또 다른 열정의 공간이었다. 맨 위쪽 전시실로 들어선 우리는 또다시 선생의 노고와 열정을 목도했다. 자식들이 창조해낸 각종 그림과 작품들이 어둠 속에서 빛을 기다리고 있었다. 더구나 선생이 현직 시절 써 온 교직일기는 국가기록원의 인정을 받아 김구, 안중근, 윤봉길 선생의 일기와 함께 국제기록문화 전시회에 선보였다는 설명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선생의 설명은 더욱 힘이 넘쳤고, 마침내 거대한 풍금 앞에 앉아 동요를 연주하셨다. 생생하게 건반을 두드리는 선생의 모습에서 불쑥 유년의 교실이 소환되었고, 그 피아노가 200년이나 된 독일제 명품이라는 설명에 격한 감동이 밀려왔다. 귀한 교육자재가 숨겨온 소리를 선사한 날, 선생의 입가에도 감동과 안타까움이 교차되고 있었다.

온갖 곡식과 꽃들이 만개한 박물관 동산은 이제 연로하신 선생의 열정만으로 버텨내기엔 지쳐보였다. 기울고 먼지 쓴 소품에 생명을 불어넣고 다시 가치와 의미를 나눌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과 관심이 절실해 보인다. 인근 교육기관 등의 연계가 없진 않지만 이 또한 요원한 듯하다. 한 개인의 애정이라고만 하기엔 그 교육적 가치가 아깝다. 평생을 교육에 몸 바친 선생의 흔적이지만 그 속에는 우리네 추억과 이야기가 살아 숨 쉬고 시대를 이어가는 지혜와 사랑이 넘쳐흐른다. 낡고 허기진 기억들이 도태되지 않고 열정과 추억으로 되살아날 수 있도록 작은 박물관에 더 많은 사랑과 애정의 손길이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진삼 옛 국도 신복마을 어귀엔 “박연묵 교육박물관‘이라는 팻말이 소담하게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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