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사라진 시간'

'사라진 시간' 포스터.
'사라진 시간' 포스터.

배우 정진영의 감독 데뷔작인 <사라진 시간>은 신인감독임에도 꽤 과감하며 불친절하다. 그래서 참 모호하다. 연극과 영화 무대에서 잔뼈가 굵었고 이창동 감독의 연출부 경험도 있어서 그 관록으로 나온 결과물이라기보다, 인간 정진영과 예술가 정진영의 현 지점을 고민하고 인식하고 성찰한 결과물이 <사라진 시간>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 모호함을 표현하는 배우 조진웅은 마치 정진영의 속에 들어갔다 나온 듯 러닝타임 전체의 분위기를 만든다.

한적한 소도시의 화재사건을 수사하던 형구(조진웅)는 하루아침에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뒤바뀌는 충격적인 상황에 빠지게 된다. 내가 알던 모든 것이 사라진 상황에서 그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미스터리 스릴러로 개봉한 이 영화는 공개한 줄거리부터 비밀스러운 장르의 향기를 풍기지만, 정작 뚜껑을 열고 보면 미스터리와는 거리가 있다. 스릴러와도 공통점을 찾기 어렵다. 그래서 조진웅 주연의 긴장감 넘치고 액션 보는 재미도 있으며 쨍한 반전도 따라오는 예상 가능한 미스터리 스릴러를 기대한다면 이 영화는 안 보는 것을 권한다.

<사라진 시간>은 정해진 줄거리를 따라가지만 관객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면 내가 무얼 봤지? 라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바로 그 느낌이 이 영화가 위치한 지점이다. 장자의 호접몽이나 평행세계를 끌어들여 모호함을 설명하거나 영화를 이해하려고 할 수도 있지만 그조차 부질없다. 감독은 영화 속으로 배우들을 던져 넣었고 알 수 없이 펼쳐진 그 상황을 보면서 관객은 의문을 가진다. 

‘삶이란 그런 게 아닐까.’ ‘내가 아는 내가 내가 아닐 수 있고 지금의 내 삶이 현실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고 도는 근원적 물음을 던지고 영화는 끝난다. 신인 감독 치고는 참 용감한 화법이지만 삼십 년 너머 예술가로 살아온 정재영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라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래서 이 영화는 호불호가 심하게 갈릴 수 있을 듯하다. 
관객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보여주고 싶은 이야기’를 만든 정진영 감독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차기작을 만약 고려하고 있다면 조금만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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