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결백'

'결백' 포스터.
'결백' 포스터.

막장 드라마나 영화를 욕하면서 보고, 결말이 어떨지 빤히 알면서도 가슴 졸이며 보게 되는 것은 관객과 시청자를 극중으로 끌어들이는 몰입도 때문이다. 재미를 흐트러뜨리지 않는 거라면 어디서 한 번 이상은 봤음직한 장면의 연속과 추측 가능한 복선을 보고도 용인할 수밖에 없다. 사실 이런 익숙함을 소구력 있게 변주해 내는 것이 능력이며,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이 차이가 망작과 명작을 가른다. 이를테면 식상한 클리셰를 살짝 비틀어 개성을 더하는 기술, 진부함을 신선함으로 포장하는 테크닉 같은 것 말이다. 이도저도 아니라면 대체로 영화가 개봉한 줄도 모른 채 빛의 속도로 잊히고 만다. 잘해야 분위기 타고 본전치기나 할까. 사실 그 정도만 해도 엄청난 다행이지만, 안타깝게도 <결백>은 다행이라는 말을 쉽게 못할 것 같다. 

코로나로 오랜 기다림 끝에 개봉한 <결백>은 박상현 감독의 첫 장편영화 데뷔작이자 늦깎이 신인 신혜선의 첫 주연 영화다. 유명 로펌의 에이스 변호사 정인(신혜선)이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치매에 걸린 엄마(배종옥)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그리는데, 마치 불꽃 튀는 공방이 오가는 법정스릴러물 또는 반전이 뒤통수를 때리는 추리스릴러를 기대할 법 하지 않은가. 

그러나 <결백>은 이미 영화정보에 명기하고 있듯이 (이게 반전이라면 반전이랄지) 말 그대로 ‘드라마’다. 그냥 드라마가 아니라 상처를 주고받고 봉합하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과연 누가 결백하고 누가 결백하지 않은지를 생각하게 하는, 한국적 정서가 짙게 깔린 가족극이다. 레트로 열풍을 타고 제작된 건지 기시감이 드는 줄거리는 익숙하다 못해 아득할 지경이다. 결국 얼마나 신선하게 버무려 낼 지가 관건인데, 아무리 봐도 새로운 시도보다는 통속적인 안전장치가 더 눈에 띈다.

이 안전장치가 때때로 강력한 무기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결백>에서도 제대로 기능했다고 할 수 없으니 문제다. 오히려 안전장치가 부메랑이 되어서 묵직한 결론을 도모하지 않으며, 이미 쌓아 올린 이야기를 전복할만한 기막힌 반전을 이끌어내지도 못한다. 신인답지 않은 신혜선 그리고 허준호, 배종옥이라는 배우들의 연기에 힘입어 신파만 더 도드라지는 형국이다. 딱 억지 신파 직전에서 멈췄다는 게 그나마 손뼉 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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