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과 사람이 함께?’…발자국 화석 수수께끼를 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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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과 사람이 함께?’…발자국 화석 수수께끼를 풀다
  • 하병주 기자
  • 승인 2020.06.16 11: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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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 자혜리 ‘두 발 걸음’ 발자국 주인공은 원시악어”
진주교대 한국지질유산연구소, 국제공동연구 결과 발표
김경수 소장 “발바닥 지문도 뚜렷…세계 최초 발견 의미”
사천·진주·고성 백악기 화석산지, 세계자연유산 등재 가능?
백악기에 두 발로 걷는 원시악어의 복원도(한국지질유산연구소 제공)
백악기에 두 발로 걷는 원시악어의 복원도(한국지질유산연구소 제공)

‘공룡 발자국 옆에 사람 발자국 같은 게 있네. 이게 가능해?’

사천시 서포면 자혜리에서 1억 1000만 년 전 백악기 시대에 누군가 두 발로 걸어 다녔던 흔적이 있어 학계에 놀라움을 주고 있다. 심지어 이 발자국은 18~24cm 크기에 한 걸음의 폭이 40cm 안팎이어서 얼핏 봐선 사람 발자국으로 착각할 정도다.(관련기사 1면)

하지만 인류의 출발점으로 꼽히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출현이 390만 년 전, 더 높게 보더라도 700만 년 전쯤이라는 게 학계의 주장이고 보면, 두 발로 직립보행을 하는 영장류와 공룡이 같은 시기에 살았을 리가 없다. 그럼 그 옛날 여러 초식공룡과 육식공룡이 노닐던 곳에서 한가롭게 걸어 다녔던 이 두 발 발자국의 주인공은 누구란 말인가.

진주교육대학교 부설 한국지질유산연구소가 이 궁금증에 답했다. 그 주인공이 두 발로 걸었던 원시악어라고. ‘오늘날엔 네 발로 걷는 악어뿐이지만 2억 년이 넘는 더 옛날인 트라이아스기엔 두 발로 걷는 원시악어가 있었고, 이 원시악어가 공룡이 번성하던 중생대 쥬라기와 백악기엔 멸종했을 거라고 여겼지만 백악기까지도 잘 살아남았음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설명이다. 발자국이 발견된 지층은 중생대 백악기 진주층이다. 발자국 주인공의 몸길이는 최대 3m로 추정했다.

서포면 자혜리 화석 발견 현장에서 김경수 교수가 설명을 하고 있다.
서포면 자혜리 화석 발견 현장에서 김경수 교수가 설명을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지질연구소를 이끄는 김경수 소장(진주교대 과학교육과 교수)은 “두 발로 걷는 악어 발자국 화석의 발견은 이번이 세계 최초”라고 의미를 새겼다. 전 세계에 악어 발자국 화석이 30곳 정도 발견돼 있지만 모두 네 발자국 화석이라는 것. 특히 서포 자혜리에선 두 발로 걷는 악어와 네 발로 걷는 악어 발자국이 동시에 발견됐다는 점도 큰 특징이라고 김 소장은 설명했다.

한국지질유산연구소는 자혜리에서 발견한 세계 최초의 백악기 원시악어 발자국 화석에 대한 연구 결과를 6월 12일에 네이처 자매 국제학술지인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발표했다. 논문 제목은 ‘한국의 백악기 지층에서 발견된 대형 이족 보행 악어류에 대한 보행렬 증거(Trackway evidence for large bipedal crocodylomorphs from the Cretaceous of Korea)’이다.

연구팀은 이 원시악어 발자국에 ‘바트라초푸스 그란디스(Batrachopus grandis)’라는 새로운 이름(신종)을 붙였다. ‘대형 바트라초푸스 원시악어 발자국(large Batrachopus)’이라는 뜻을 담았다. 

그렇다면 이 발자국의 특징은 뭘까. 또 사람 발자국과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 걸까.

논문의 1저자인 김 소장은 먼저 이번 발자국 화석에서 발가락이 4개만 보인다는 점을 꼽았다. 특히 첫 번째 발가락이 가장 작고, 세 번째 발가락이 가장 긴 특징은 오늘날 악어의 뒷발 모양과 매우 닮았다고 했다. 반면 사람의 발은 첫 번째 발가락이 가장 크고 길어서 모양에 분명한 차이가 있음을 강조했다.

(왼쪽부터)김경수 한국지질유산연구소장. 자혜리 원시악어의 두 발 보행렬. 현생 악어의 발바닥 피부와 원시악어의 발바닥 비교(한국지질유산연구소 제공).
(왼쪽부터)김경수 한국지질유산연구소장. 자혜리 원시악어의 두 발 보행렬. 현생 악어의 발바닥 피부와 원시악어의 발바닥 비교(한국지질유산연구소 제공).

이어 발자국에 나타난 발바닥 지문, 즉 발바닥 피부 자국이 보존돼 있는 점도 중요한 특징으로 봤다. 이 모양이 오늘날의 악어 발바닥 피부 패턴과 거의 일치한다는 게 김 소장의 설명이다.

이 발바닥 지문이 아니었다면 이번 발자국의 주인공은 자칫 익룡으로 지목될 수도 있었다. 김 소장은 “사실 이번 발자국에 앞서 남해 가인리와 사천 아두섬에서 비슷한 발자국을 발견한 사례가 있었다”며, “그땐 두 발로 걷는 악어로 보기보다 두 발로 걷는 익룡이라 여겼는데, 이번 연구로 앞선 두 사례를 바로잡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 소장에 따르면 두 발로 걷는 원시악어는 중생대 트라이아스기에 공룡과 함께 육상 생물 중 최상위 포식자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의 노스캐롤라이나, 유타, 와이오밍 등 여러 지역 트라이아스기 지층에서 화석으로 여러 차례 발견된 바 있다. 두 발로 걷는 이 원시악어와 비슷한 종류의 원시악어 발자국이 사천 자혜리에서 처음으로 발견됐고, 이로써 이 원시악어의 생존 시기도 백악기까지 이어지게 되는 셈이다.

이번 발자국 화석 연구로 두 발로 걷는 거대한 몸집을 가진 원시악어가 우리나라 백악기 호숫가에 살았음을 알 수 있다. 발자국이 발견된 서포면 자혜리 전원주택지에선 악어뿐만 아니라 목이 긴 초식공룡이나 육식공룡, 거북이, 새의 발자국과 식물의 흔적도 보여 학술적 가치가 매우 뛰어나다는 평가다.

김 소장은 “이번 연구 결과와 기존의 사천, 진주, 고성 일대의 백악기 공룡 발자국 화석산지를 더하면 세계자연유산 등재 기준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충족한다”며 “보존과 적극적인 활용 방안 마련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지질유산연구소는 이번 연구가 한국, 미국, 호주 연구진의 참여로 국제 공동 연구로 진행됐다고 밝혔다. 한국에서는 김경수 소장과 배슬미 연구원,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임종덕 복원기술연구실장이 참여했고, 미국의 콜로라도 대학교 마틴 로클리 교수, 호주 퀸즈랜드대학교 앤서니 로밀리오 박사가 참여했다.

악어 발자국 화석이 발견된 서포면 자혜리.
악어 발자국 화석이 발견된 서포면 자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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