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씨팔. 20×15. 2020.
아! 씨팔. 20×15. 2020.

어느 스님의 암자로 보내질 현판 글씨라고 했다. 암자의 이름을 문자로 받아보고는 욕심 없이 써드려도 될 법한 무위(無爲)적인 이름이라 여겼다. 그리고는 직접 보는 앞에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씨 받으시러 오시지요. 저는 스님의 취향을 잘 모르니 쓰는 걸 직접 보시고 어울리는 느낌을 찾아봅시다. 때마침 저도 손이 아주 근질근질하던 참이었거든요.”

절에 보내질 글씨니 아침부터 정갈하게 먹을 갈았고 화선지를 자르고 붓을 가지런히 놓았다. 창작 전에 정화수 떠놓고 비는 대신 주변 정리를 하는 오래된 습관이 있었다. 머릿속에 잡다한 생각들을 없애려는 종교의식과도 같았다. 그 의식이 끝나갈 무렵은 화창한 초여름의 오후였다. 서로 문맥이 통할법한 두 남자가 직접 방문을 했고, 숨을 채 돌리기도 전에 내 손에는 붓이 들려 있었다. 

붓이 춤추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붓이 먹물을 듬뿍 만나 흰 화선지 위로 지나가며 획을 긋고 문자를 만들어 낸다. 거침없었고 자유롭게 흐느적거리는 붓을 감당할 수 없었다. 터져 나오는 탄성을 숨길 수가 없었다. “저 지금 완전 탄력 받았어요. 이 지경에서는 도저히 그냥 붓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갖고 싶은 글귀 하나 던져 보세요.” 갑작스러운 제안에 밤마다 음악으로 고뇌를 풀던 젊은 학자가 그런다. “씨팔...아! 씨팔이 좋아요. 제가 평생 가장 많이 내뱉는 말이거든요.” “아니, 저명하신 학자께서 어찌 그런 욕지거리를 쓰십니까?” 하면서도 기다렸다는 듯이 붓을 멈추지 않았다. 

붓을 든 여자는 “아! 씨팔”을 힘껏 써내고, 받아 든 젊은 학자는 “아! 씨팔”을 시원하게 읽어낸다. 또 다른 남자는 대리만족하듯 호탕하게 웃어댄다. 

“아! 씨팔”을 외치고 있을 젊은 학자는 당당함이 있어 비겁해 보이지 않았다. 열정적으로 살아내며 뱉는 이 한마디가 앞으로 겪어내야만 하는 숨 막힘의 치유처럼 들렸다. 허공에 대고 “아! 씨팔” 외치는 울림이 한 모금 깊게 빨아 당긴 담배연기와 같다 여겼다. 

사람의 마음에는 쏟아내고 싶은 또 다른 “아! 씨팔”이 있었다. 때로는 비타민 한 알보다 강력했고, 누구의 카타르시스가 되기도 했다. 그날 밤 SNS에 올린 “아! 씨팔”을 보며 누군가는 행복해했다. 점잖은 사람들도 행복해했다. 

얼마 뒤, 이 사람 저 사람 카톡 대문사진에는 이런... “아! 씨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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