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섭 시인
송창섭 시인

어림잡아 삼십오 년도 더 된 일입니다. 하루는 담임 맡은 반의 어느 학생 아버지가 찾아왔습니다. 학생의 이름을 듣고는 무슨 용무인지 짐작했습니다. 지난날 농촌에는 자녀 교육 때문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가정이 많아, 농가 자녀 장학금이라 하여 이를 지원해 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이런 배려와 혜택은 농가에 큰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어느 학생 아버지는 바로 그 장학금 서류 일로 온 것이었습니다. 

며칠 전 그 학생은 저에게 종이 한 장을 가져왔습니다. 장학생 추천서였지요. 내용을 읽어 보고는 학생과 학부모 가정에 많은 도움이 되겠구나, 생각하며 빈칸을 작성했습니다. 양식 아래쪽에는 장학생 선발 자격 요건이라 하여 학생 성적 기준을 명시해 놓았는데, 교내 성적이 석차 백분율 50/100 이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절반 안에만 들면 해당되니까 무난하겠지 여기고는 별 고민 없이 학생 성적을 산출했습니다. 아 그런데 곤란한 문제가 생겼으니 이 무슨 운명의 해코집니까. 

당시 00과의 재적 학생 수가 237명이었는데 이 학생 석차가 119등이었습니다. 이를 백분율로 환산을 하면 50.2109……였습니다. 자격 요건에 간발의 차이로 미달했던 것이지요. 이게 사단을 일으킨 요인이 되었습니다. 해당되지 않는다며 학생에게 추천서를 돌려보냈더니 그 아버지가 온 것입니다. 어떻게든 좀 해 달라고요. 사정이 참 딱합니다. 하지만 규정이 그러니 저로서는 어쩔 방법이 없었습니다. 안 된다고 거듭 말씀을 드렸지요. 아버지는 마음이 무척 상했는지 흥분한 상태로 교무실을 나갔습니다. 

이어 교장실에서 내려오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교장실에는 교장선생님, 서무과장(현 행정실장), 학생의 아버지가 자리를 선점하고 있었습니다. 이야기 내용은 이미 밝힌 것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0.2의 아주 미미한 차이니까 담임 선생이 사정을 좀 봐 줘서 50을 넘지 않도록 석차를 맞춰 달라는 주문이었습니다. 교장선생님은 아무 말씀 없이 무거운 표정으로 앉아 계셨고, 학부형의 선배라는 서무과장은 저에게 우회적으로 종용을 했습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누가 문제 삼을 일도 아니니 그렇게 해 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학부형은 제발 형편 어려운 집안 돕는 셈 치고 봐 달라는 요구를 계속했고요. 

교사로 발 내디딘 지 얼마 되지 않아 겪는 이 상황은 무척 난감했습니다. 하지만 제 입장은 이야기가 거듭될수록 확고했습니다. ‘마음 쓰리지만 이건 안 되는 일이야.’ 그때처럼 한 명의 가치가 그토록 소중하고 그토록 크게 느껴진 적이 없었습니다. 석차가 118등이었다면 그래서 백분율이 49.7890……이었다면 무슨 문제고 고민이겠습니까. 있는 그대로 작성해서 도장 찍어 주면 그뿐 군더더기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새삼 이제 와서 기억나지도 않았을 테고요. 

중언부언으로 답답하고 지루한 상황이 얼마간 이어졌습니다. 제 의중을 확실하게 파악한 학부형이 자리를 박차고 나갔습니다. 안타까움에 저도 뒤따라 교장실을 빠져나왔습니다. 앞서가던 학생의 아버지가 갑자기 뒤돌아서더니 느닷없이 저에게 오천 원 두 장을 내밀었습니다. 거절하자 휘익 던지고는 부르는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냥 가 버렸습니다.  

오후에 서무과장은 다시 저를 불러 어떤 게 학생을 위한 길인지 다시 생각해 보라며 은근히 압력을 가했습니다. 서무실을 나오며 마지막으로 한 말이 아직도 쟁쟁거립니다. ‘이건 제 능력 밖의 일입니다. 또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일 아닙니까.’  

다음 날 오천 원 두 장을 흰 종이에 싸서 봉투에 넣어 아버지께 갖다 드리라며 학생 편으로 보냈습니다. 그 학생이 아버지께 시달리지는 않을까 내심 걱정스러웠습니다. 기우라 믿고 싶었지만, 며칠 내내 제 속은 뒤틀리고 탈이 난 것처럼 불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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