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평가, 그 가능성을 엿보다

방과 후 수업으로 큰 아이는 3년, 둘째와 막둥이는 2년 주산을 했습니다. 2~3년을 월·수·금요일 주산만 하더니 지겹다면서 다른 과목으로 바꿔 달라고 했습니다. 방학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 때까지 계속 다니라고 했지만 한 번 하기 싫은 주산을 아빠가 하라고 한다고 계속할 아이들이 아니었습니다.  

"아빠 이제 주산 안 하고 싶어요."
"방학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계속해야지."
"하기 싫다는 말이에요."
"주산하면 수학 잘 할 수 있어. 막둥이 너 수학 어려워 하잖아. 주산을 하면 머리가 좋아지는데."

"아빠 나도 주산 하기 싫어요. 볼링하고 싶어요."
"그럼 인헌이하고, 서헌이 너희들도 주산하기 싫어."

"오빠는 볼링, 체헌이하고 나는 칼라믹스하고 싶어요."
"칼라믹스?"

수요일과 금요일 볼링을 하는 큰 아이는 금방 얼굴에 웃음이 돋아났습니다. 학교에서 볼링장까지 걸어 20분이 넘는 거리에 있지만 싫다는 내색 한 번하지 않고 잘 다녔습니다. 둘째와 막둥이는 칼라믹스를 하고부터 한 번 다녀 올 때마다 하나씩 만들어왔습니다. 첫날 만들어 온 것은 '사람'과 '불자동차'였습니다. 큰 아이가 점수를 매겼습니다.  

"사람이네. 서헌이는 사람을 제대로 만들었는데 체헌이는 오른쪽 눈을 크게 만들었다. 서헌이는 손가락과 발도 잘 만들었는데 체헌이 너는 손가락을 많이 만들었다."

"형아는 오늘은 처음이라 그랬지."
"누나는 처음 아닌가."

"누나는 나보다 나이가 두 살 많잖아."

"막둥이 잘 만들었다. 다음에는 잘 만들 수 있을거야."
"아빠, 형은 누나가 잘 만들었다고 해요. 나도 잘 만들었죠?"
"그래 우리 막둥이 잘 만들었다."

"다음 칼라믹스는 점수를 매기겠다."
"형이 선생님이냐?"
 

큰 아이는 자기가 평가받는 것을 참 싫어하면서 동생들 평가하는 일은 잘 합니다. 동생들이 그린 그림이나, 쓴 글을 평가하여 점수를 매기면 둘째와 막둥이가 화를 내지요. 하지만 오빠와 형이 내린 평가를 반박할 수 없으니 순순히 받아들이지요. 두 번째 칼라믹스 공부에서 만들어 온 것은 '우주'입니다.  

 "아빠 오늘은 우주를 만들었어요. 별과 해, 우주선을 만들어요."
"그런데 막둥이는?"

"체헌이는 잃어버렸어요."

"뭐! 잃어버렸다고. 아니 만들고 나서 집에 바로 왔을 것인데 어떻게 잃어버려?"

"사실은 만들었는데 별과 해가 떨어져나가 그만 망가졌어요."

"아니 떨어져 나가도 괜찮아."
"그럼 내가 점수를 매깁니다. 서헌이는 100점, 막둥이는 빵점."

"형아 그런 것이 어디 있어. 나도 만들었단 말이야."
"너는 안 가지고 왔잖아. 형이 점수 매긴다고 했으면 해와 별이 떨어져 나가도 가지고 와야지 안 그래."

"다음에는 내가 누나보다 더 좋은 점수 받을 거다." 

 세 번째 칼라믹스 공부를 하고 온 둘째와 막둥이 손에는 '별자리'가 들려 있었습니다. 별자리 이름은 궁수자리, 물병자리, 게자리, 양자리, 물고기 자리였습니다. 큰 아이는 별자리 하나 하나에 점수를 매겼습니다. 

"야 우리 체헌이가 '양자리'는 누나보다 더 잘 만들었다. 누나는 50점, 체헌이는 100점이다. 서헌이가 50점 받은 이유는 양 얼굴이 꼭 생쥐 같이 생겼기 때문이다."

"누나, 어떻게 양 머리를 생쥐같이 만들었어?"

"'게자리'를 보자. 게자리는 둘다 50점."
"왜 50점 밖에 안 돼?"

"잘 보면 서헌이는 게 다리가 너무 가늘고, 체헌이는 다리가 떨어져 나가버렸다. 그리고 물고기 자리를 보면 서헌이는 비늘까지 만들었지만 체헌이는 비늘이 없다. 그래서 물고기 자리에서 서헌이는 99점, 체헌이는 60점."

"아빠는 안 매겨요?"
"인헌이가 잘 매기고 있잖아."
 

점수 매기는 모습을 보면서 막무가내가 아니라 어느 정도 기준을 가지고 점수를 매기고 있었습니다. 왜 내 점수는 이것밖에 안 주느냐고 다투지만 자기들이 만든 칼라믹스를 아빠와 엄마가 매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 스스로 매기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아이들도 자기가 만든 칼라믹스에 대한 판단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칼라믹스뿐만 아니라 시험도 그렇지 않을까요? 어른 기준이 아닌 아이들 기준으로 자신들을 평가하는 방법,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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