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삼조 시인.
정삼조 시인.

얼마 전 소식을 전해 드렸던 최송량 시인의 시비 제막식이 이달 30일 11시에 노산공원에서 열린다. 이 시비를 제막하기 위해 자체 모금 운동을 벌이는 한편, 시에 건의하여 시비 설치 장소를 할애 받고 제막식 관련 제반 준비에도 모든 열과 성을 아끼지 않고 있는 재경삼천포고등학교 동문회에 경의를 표한다. 사적인 손익에 구애받지 않고 공적인 이익에 매진하는 일은 참으로 쉽지 않다. 고향을 위하는 순수한 이 열정이 식지 않도록 우리 지역에 사는 이들은 그들의 노고에 찬사와 격려를 아끼지 않아야 하리라는 생각이 새삼스럽다.

이 시비 제막과 함께 유의해야 할 시인으로 지역 문단의 원로가 되는 우보 박남조 선생을 지난번 최 시인과 함께 거론해 드린 바 있지만, 다시금 돌이켜보니 꼭 기념해 드려야 마땅할 우리 지역 출신 문인이 또 있다. 바로 소설가 김인배 선배이시다. 

김 선배는 1948년에 우리 지역에서 태어나 초중고를 마치고 대학을 진주교대와 동아대학교 국문과에서 수학한 후 동아대에서 박사학위까지 마치셨다. 직장은 진주의 삼현여고에 오래 계셨고, 마산의 창신대 교수를 거쳐 돌아가실 무렵에는 진주교대 대학원에서 강의를 하신 것으로 안다. 건강하게 사셨는데 갑작스러운 병이 와서 작년 1월 19일 작고하셨다. 

1975년 당시 신생(新生)이지만 매우 유력했던 계간 문예지 「문학과 지성」에 소설 ‘방울뱀’이 공모 당선되어 일약 등단하셨고, 1980년 무렵부터는 문단의 변방에 거주하는 불리함을 딛고 당시의 유명 작가인 이문열, 윤후명 씨 등과 교유하며 함께 동인 활동을 하기도 하셨다. 소설집으로 「하늘 궁전」, 「후박나무 밑의 사랑」, 「비형랑의 낮과 밤」 등을 펴냈으며, 돌아가시기 두 달 전 800여 쪽에 이르는 장편 「열린 문, 닫힌 문」을 상재하셨다. 동생인 김문배 작가와 함께 한일 고대사와 언어를 연구해 「「일본서기」, 고대어는 한국어」, 「전혀 다른 향가 및 만엽가」, 「임나 신론」 등의 저술을 남기기도 하셨다.

어떤 사람은 이르기를 우리 지역의 대표 문인을 꼽는다면, 시로는 박재삼 시인이고 소설로는 김인배 작가라고도 한다. 미래에 더 훌륭한 문인들이 나타나 이 설(說)이 무너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언젠가 우리 지역 출신 작가의 문학비가 선다면 하는 가정 아래 김문배 작가의 블로그에 올라 있는 김인배 선배의 소설 속 글귀 한 부분을 소개한다.

“낮게 날으는 새떼들, 여름날 오후의 소나기를 몰고 오는 먹구름의 징조, 이윽고 후두둑 떨어지는 빗줄기를 피해 당신이 어느 외진 골목길을 돌아갈 무렵쯤, 설령 나는 여기에 있고 당신은 당신대로 길을 가고 있더라도, 그럼에도 나는, 도회의 그늘진 지붕 밑을 어슬렁거리며 지나가는 당신의 숙인 머리, 당신의 낡고 헤진 구두코 끝에서 튀는 물방울을 보고 있으며, 젖은 양말을 통해 발바닥에서부터 서서히 배어드는 습기가 오한처럼 내 온몸에 전해져 으스스한 떨림을 느낄 수 있음은 어인 일인가? 당신은, 내가 ‘우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였다.” 
 - 단편 ‘하늘궁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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