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삼조 시인.
정삼조 시인.

여름이 시작된다는 입하(立夏)도 한 주가 지났으니, 봄은 분명 갔으련만 그래도 사람 마음은 아직 봄을 붙들고 있다. 날은 더워졌어도 아직 봄꽃이 다 지지 않았고 좋은 봄날에 대한 미련도 남아 아직은 여름이 아니라는 위로를 스스로 하고 있는 참일 게다. 하지만 부지런한 농부는 벌써 여름 농사를 위한 모내기 준비가 한창이고, 어지간한 밭작물은 벌써 봄비를 맞은 지 오래다. 코로나19만 아니라면 더 좋은 시절이었을 걸 하는 생각이 드는 오월에 생각지도 않은 시집 두 권을 만났다.

먼저 만난 시집은 통영 사시는 설복도 선생의 동시집 「동피랑 아이들」이었다. 설 선생은 칠십은 넘어 보이는 점잖은 풍모에 멋진 모자를 쓰시고 의복도 그에 맞춰 가지런히 입으신 분이셨다. 작년에 어느 문학 모임에선가 만나 하룻밤 늦도록 술을 마신 인연을 잊지 않고 당신의 평생 처음 내는 귀한 책을 보내주셨다. 수필을 쓰신다고 했는데 웬 동시집을 내셨나 하며 책을 펼치니 마음만이라도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다. 이 양반이 이래서 동시를 쓰셨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동시집의 첫 번째 시를 소개한다. 제목은 ‘솔바늘’이다.

“솔밭 그늘에 누워 하늘을 보면/ 수없는 솔바늘이 바느질 한다// 드넓은 하늘에 넘치는 옷감// 비 개인 오후엔 색동옷 만들고/ 저녁놀 따다가 분홍 옷도 만들고// 아가구름 사슴구름 오리구름도/ 한 번은 옷섶을 다듬다 가고// 살래살래 풋바람 저울질하는/ 그런 날엔 하늬바람 속살을 깁고// 날마다 조각달 기워가다가/ 동그란 내 구슬에 무슨 수를 놓을까”

다음 시집은 진주 출신이고 서울 사는 강희산 시인의 「하루 볕이 모여서 2」이다. 강희산 시인은 나와 같은 월간시지로 등단한 선배 시인인데 나이도 나보다는 조금 많다. 고향이 비슷해서 반갑다던 분이다. 등산을 좋아해서 「길이 아니면 가지 마라」라는 백두대간 종주 에세이집을 낸 바 있고 이 시집 외에도 여섯 권의 시집이 있다. 이번 시집은 특별히 ‘육아시집’이라 이름했는데 손주를 돌보면서 느낀 손주의 세계를 노래한 시이다. 시집의 수익금은 멕시코 캄페체 지방의 어느 억울한 고아 오누이를 돕는 데 쓰인다 했다. 역시 시집의 첫 번째 시를 소개한다. 제목은 ‘아기는 아플 때 자란다’이다.

“방글방글 잘 웃던 우리 아기/ 축 처진 모습이 애처롭네// 설사를 좌-악-좌-악-소나기처럼 하니/ 똥물이 기저귀 밖으로 속절없이 새어/ 내 옷도 어물쩍 한 통속이 되어 넘어가네// 의사는 장염이라 했으며 굶기지 말고/ 유제품만 빼고 뭐든지 자꾸 먹이라 했네/ 해서, 받아 온 약을 숟가락에 담아 아기의 혀 위에/ 놓는 동시 인정사정없이 힘껏 눌렀네/ 목젖을 타고 내려간 약물을 강제로 받은 우리 아기/ 억울하다고 하소연하며 신문고 두드리는 소리/ 들어보소! 발악하는 울음소리 들어보소/ 천상, 강원도 설악山 토왕폭포 소리요”

어떤 시인은 ‘여든에 돌아보니 칠십도 철부지’라 했다. 현명한 말씀이다. 하지만, 칠십에도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이 계절의 봄비를 맞으며 그 마음을 더 키운다면 어떨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이 위 두 시집을 읽으며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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