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레이니 데이 인 뉴욕'

'레이니 데이 인 뉴욕' 포스터.
'레이니 데이 인 뉴욕' 포스터.

대학 캠퍼스커플이 1박2일 뉴욕 여행에 나섰다. 로맨틱한 데이트 또는 성공으로 이끌어줄 디딤돌이라는 각자의 로망을 기대했지만 세상일이란 뜻대로 되지 않는 법이라 자꾸만 계획이 어그러진다. 아니, 이런 게 여행의 묘미인지도 모른다. 

1935년생, 우리 나이로는 86살의 우디 앨런 감독이 또다시 노익장 과시에 나섰다. 1965년부터 거의 매년 한 편씩 연출하고 있는데,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은 그의 연출 필모그래피 가운데 49번째 작품이다. (딱 10편만 연출하고 은퇴하겠다던, 지금까지 9편을 연출한 쿠엔틴 타란티노는 우디 앨런의 연출 열정을 본받아야 한다) 

명성만큼 훌륭한 작품도 많지만 대체로 ‘걸작-범작-걸작-범작’ 순으로 퐁당퐁당하고 있어서 크게 기대하지 않아야 하는데, 티모시 샬라메(개츠비), 엘르 패닝(애슐리), 셀레나 고메즈(챈)라는 현재 가장 뜨거운 20대 청춘 배우가 출연한다고 하니 기대를 않는 게 이상한 상황이다. 대단한 감독에 초특급 배우의 조합이라니 얼마나 환상적인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번의 퐁당퐁당 징검다리는 발을 헛디딘 꼴이다. 

누구나 여행에 관한, 여행지에 관한 각자의 로망이 있다. 일상에서 벗어나 비현실의 환상이 펼쳐질 것만 같아서 그 마법의 문을 기다리는 심정이랄까,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의 세 청춘 남녀가 보여주는 장밋빛 로망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지금이라도 당장 뉴욕으로 달려가고 싶을 만큼 황홀하다. 비와 음악과 청춘 남녀들의 사랑이 뉴욕에서 어우러진다. 게다가 우디 앨런 영화의 각인과도 같은 정신없는 수다와 멋진 재즈가 있고 도시의 낭만이 가득하지 않은가. 

이처럼 눈과 귀가 즐거움에도 불구하고 가슴이 울리지 않는 건, 노 감독과 이 시대의 감성이 묘하게 어긋나기 때문이다. <미드나잇 인 파리>의 성공이 달콤했었나 보다. 늘 그렇듯이 자기복제라는 숱한 비판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조금씩 변주하며 돌파해왔다고 할 수 있겠으나 이번에는 작은 변별력조차 희미하기만 하다. 파릇파릇한 청춘이 젊음을 한껏 보여주는데, 어쩐지 빛바랜 그늘이 덧입혀진 기분이다. 

뉴욕을 너무나 사랑하는 뉴요커 감독은 지금까지 줄기차게 뉴욕 예찬을 해왔고, 세 명의 초특급 청춘 남녀를 끌어들여 또다시 뉴욕 예찬을 했다는 것만 기억에 남는다. 아, 티모시 살라메의 주체할 수 없는 매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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