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속 우리 문화 톺아보기>③기온마츠리
<1편>시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눈에 띄는 일본 축제 '마츠리'

▲ 기온마츠리 32기 가마행렬(야마보코 순행) 중 맨 먼저 출발을 기다리는 가마(나기나타보코)와 구경나온 시민들
2009년 7월 16일 밤 기온마츠리 전야제가 열리는 교토시내 가라스마 거리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이날은 일본 3대 마츠리의 하나인 기온마츠리 전야제가 열리는 것이다. 일행 중에는 일본에 여러 번 다녔으면서도 기온마츠리는 처음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기온마츠리 전야제에서는 32기 가마 전체의 제등식과 기온바야시라 불리는 악사들의 악기 연주 등으로 거리는 온통 사람들의 물결로 가득 찼고, 흥청거렸다.
 
젊은이들이 쌍쌍이 유카타를 입고 게다를 신고 나온 모습은 마츠리의 나라 일본이 아니면 볼 수 없는 풍경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가와이이(예쁘다의 일본말)”를 외쳐대며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면 함박웃음을 지으며 흔쾌히 허락한다. 젊은이들이 외래 것이 아닌 자신들의 전통을 즐기는 모습이 부러울 지경이었다.
 
“일본의 마츠리는 지역 경제의 부흥과 밀접하다. 따라서 신사(神社)에서는 단절된 옛 마츠리를 발굴하여 새로운 형태의 마츠리로 만들고자 애쓰고 있다.”라고 민속학자 스가타 씨는 그의 책 《일본의 마츠리》에서 오늘날 일본 마츠리의 현주소를 밝혔다. 그러면서 지역관광협회나 상인협회의 후원을 받아 점점 이벤트화해가는 마츠리를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고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츠리가 지닌 전통적인 성(聖)스러움을 잊지 말기를 강조하고 있다.
 
이벤트화 되어가는 일본의 마츠리! 일본 민속학자의 고민을 보면서 우리의 축제 문화를 되돌아 본다.
 
최근 한국에도 축제가 부쩍 늘었다. 지방마다 예외 없이 축제를 치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축제는 이제 한국문화에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요 문화행사다. 영암왕인문화축제, 전주세계소리축제, 대가야체험축제 등의 문화축제가 있는가 하면 대관령눈꽃축제, 무주반딧불축제 따위의 자연을 소재로 한 축제, 인제빙어축제, 성주참외축제 등의 먹거리를 주제로 한 축제, 제주마라톤축제, 충주세계무술축제 따위의 운동 축제도 있다.
 
그런가 하면 예부터 마을의 안녕과 풍년, 풍어를 비손하는 잔치도 벌인다. 그런데 이 수많은 축제 속에서도 굿, 풍어제, 단오놀이 등은 이제 그 명맥이 거의 끊어져 가고 있다. 거기다 현대에 와서 생긴 축제들은 대개 관 주도의 축제로 주민들의 참여가 저조한 경우가 많다.

▲ 기온마츠리 전야제에서 가마을 구경하는 유카타 입은 젊은 여성들

이쯤에서 우리는 흔히 일상적으로 쓰는 “축제(祝祭)”라는 말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 말은 일본말 슈쿠지츠(しゅうくじつ、祝日)와 사이지츠((さいじつ、祭日)의 머리글자를 따서 이뤄진 말로 일본국어사전 <大辞林>에서는 “어떠한 일(것)을 축하하는 마츠리”를 의미한다고 풀이하고 있다. 곧 축제는 마츠리인 것이다. 따라서 일본말에서 유래한 축제 대신 우리 토박이말로 “잔치”라고 해야 한다. ‘‘한산모시잔치” “인제빙어잔치”로 바꾸면 어떨까?
 
다시 일본의 마츠리로 돌아가 보자. 흔히 일본을 “마츠리의 나라”라고 부르듯 지방마다 마츠리가 성행하는데 이 마츠리는 백성의 안녕과 질병 등 재난에서 그들만의 신이 보호해주기를 비손하는 행사다.

▲ 기온마츠리 전야제에 쌍쌍이 유카타를 입고 나온 젊은이들

일본 3대 마츠리는 도쿄 칸다마츠리(神田), 교토 기온마츠리(祇園祭), 오사카 텐진마츠리(天神祭)를 꼽는다. 이 중에서도 교토 기온마츠리는 널리 알려진 마츠리인데 한 달 동안 치를 정도로 규모가 크다. 이러한 마츠리가 행해지는 장소인 신사(神社)는 일본인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곳으로 장례를 뺀 출생, 입학, 결혼 등의 모든 통과의례를 담당해주는 곳이기도 하다.
 
전야제 다음날인 2009년 7월 17일 기온마츠리의 가마행렬이 있던 교토 중심가는 구경나온 사람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가마행렬이 지나가는 요소요소에 배치된 경찰은 쏟아져 나온 시민들의 안전사고 대비에 분주한 모습이었다. 32기의 가마가 지나가는 길목마다 진을 치고 있는 구경꾼들은 제대로 이동을 할 수 없을 정도이다.
 
7월 16일 저녁의 전야제에 이은 17일 마츠리의 정점인 가마행렬은 오전 9시부터 시작되어 12시를 훌쩍 넘겨 오후 1시까지 진행되었는데도 구경꾼들은 거의 미동도 하지 않고 찜통더위에 질서 정연하게 마츠리 가마 행렬을 지켜보았다. 마치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없으면 기온마츠리가 이뤄지지 않기라도 한 듯 서너 시간의 땡볕 더위를 참아내면서 가마행렬에 손뼉을 치는 모습은 마츠리가 시민들의 호응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실감케 했다.
 
“현재 마츠리 구경꾼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지만 정작 마츠리에 참여해서 육중한 가마를 끌거나 밀어주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마츠리 본래의 종교성이 희박해지면서 지역의 이벤트화가 큰 원인이다. 앞으로 저출산 시대를 맞아 오늘의 마츠리가 어떤 상황을 맞게 될는지 걱정이다.”라는 스가타 씨의 우려는 그러나 엄살같이 느껴진다.
 
일본의 마츠리는 첫째 구경꾼들의 연령층이 다양하고 특히 젊다는 것 둘째 관주도가 아니라 마츠리보존협회를 중심으로 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그리고 상인연합회의 지원과 관광협회의 질 높은 홍보 등을 등에 업고 꾸준한 성장과 발전하고 있다.

우리는 한국 전통문화의 계승, 발전을 누구보다도 염려하지만 일본의 마츠리 현장을 직접보고 느낀 것은 한마디로 그들은 “전통과 현대를 조화롭게 계승해가고 있다.”라는 점이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왜 우리는 이렇게 잔치다운 잔치를 하지 못하는 것일까?”라는 마음으로 내내 마음이 편치 못했다. 물론 거기에는 여러 가지 까닭이 있을 것이다. 그 중 하나가 마츠리의 고장 일본, 그 일본의 제국주의가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일제강점기간 중인 1936년 조선총독부는 조선 민속놀이를 조사하여 《조선의 향토오락》이라는 책을 펴냈다. 마치 조선의 민속놀이를 사랑해서 체계적인 정리를 해준 것처럼 행세했지만 조선문화의 대대적인 조사 후에 일제는 조직적인 조선 문화 말살 정책에 돌입했다.
 
조선말과 글을 쓰지 못하게 했고,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강요했으며, 조선의 맥을 끊으려고 이름난 산마다 말뚝을 박았다. 그뿐만 아니라 모든 민속놀이는 허가를 받지 않으면 하지 못하게 했다. 그 까닭에 마을마다 펼쳐지던 온갖 민속놀이는 그 맥이 끊어질 수밖에 없었다.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이 펴낸 《경상북도의 세시풍속과 민속문화》를 보면 1930년대부터 해방 사이에 일제에 의해 중단된 민속놀이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안동 차전놀이, 의성 기마싸움, 포항 월월이청청, 경산 자인 팔광대놀이 등은 일제에 의해 중단되었다가 겨우 80년대 이후 복원되었고, 울진군 놀싸움 등은 아예 맥이 끊어진 상태다. 그러니 우리의 축제 곧 잔치가 뿌리를 내리지 못했던 것이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간 그리고 다시 한국전쟁 등으로 이어지는 국내외의 여러 어려운 상황으로 말미암아 뛰어난 전통의 각종 놀이와 잔치 등을 잊고 지낸 것이 사실이다. 비록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최근 다시 새로 생기거나 과거의 좋은 전통 잔치의 발굴, 재현 등이 서서히 일고 있는 듯해서 그나마 위안이 된다.
 
천여 년 전 전염병을 막고자 역신(疫神)의 노여움을 풀려고 시작한 제례행위 곧 기온마츠리는 전 세계적인 금융 불황기에도 지금 호황이다. 금세기에 이르러 전 세계를 강타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는 역신과 산신과 만신에 대한 제례행위를 깨끗이 몰아내고 말았으며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이웃나라 일본만은 아직도 그들만의 신을 믿고 칭송하며 제례를 받드는 의식을 고수하여 전 세계 구경꾼을 불러 모으고 있다. 발 디딜 틈도 없이 쏟아져 나온 교토 시민과 외국인들의 한바탕 잔치를 물끄러미 바라다보면서 바다 건너 내 땅의 잔치와 전통을 새삼 되돌아보았다. 다행히도 기온마츠리의 유래가 한반도 신을 모신 마츠리라는데서 그나마 위안을 해본다.
 
 
<2편> "기온마츠리의 기원은 고대 한국이었다"로 이어집니다.
   
글쓴이
이윤옥(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59yoon@hanmail.net)
김영조(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sol119@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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