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행복의 단추를 채우는 완벽한 방법'

'행복의 단추를 채우는 완벽한 방법' 포스터.
'행복의 단추를 채우는 완벽한 방법' 포스터.

어린 시절 실종된 형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 채 어른이 된 아들이 아버지와 함께 집을 나선다. 여정의 끝에는 형일지도 모르는 신원불명의 시체가 기다리고 있는데, 단지 그 이유가 아니더라도 함께 하는 이 여정은 서로에게 불편하다. 어디선가 한 번쯤, 아니 서너 번쯤은 접해봤음직한 빤하고 단순한 스토리의 <행복의 단추를 채우는 완벽한 방법-이하 행복>이 빛을 내는 건 ‘빌 나이’라는 나이 들어서 더욱 멋져진 배우 노배우 덕분이다. 삶의 아이러니를 온몸으로 체현하는 이 배우가 그 자체로 서사이자 플롯을 담당한다.
<행복>은 전형적인 로드무비의 형식을 답습하지만 진부하지는 않다. 산뜻한 화면 구성과 별것 아니지만 마음 한구석을 툭 건드리고 지나가는 에피소드 덕분이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의 중심에 빌 나이가 있다.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영화의 흐름을 특유의 유머와 감성으로 생기를 불어 넣는다. 인생은 원래 그런 것 아니냐는 듯 삶의 기묘한 삐걱거림과 어긋남을 표현해 낸다. 큰 아들의 부재와 그 부재로 인한 작은아들과의 심리적 거리를 때로는 섬세하게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는데, 감각적인 색채의 미장센과 편집으로 인해 우울한 정서로 흐르지 않는다. 전작 <어바웃 타임>에 이어 꽤나 인상적인 빌 나이표 아버지 캐릭터를 만날 수 있다.
사실 영국식 유머는 낯설다. 실제 생활에서 접할 일은 드물지만 영화 속에서는 그래도 가끔 등장하니 익숙해질 법도 한데 뭔가 어색하고 엉뚱하며 가끔씩 알 수 없는 이유로 삐걱거린다. 그래도 보고 나면 저도 모르게 싱긋 웃으며 공감하게 하는 묘한 매력이 영국식 유머가 아닐까. 혹은 우리가 워킹타이틀社 영화들을 보면서 학습한 결과일 수도 있겠다. 일정 부분 과장은 할지언정 여유와 미소를 잃지 않는다는 것 말이다.
<행복>은 그 영국식 유머와 빌 나이가 시쳇말로 찰떡을 이루며 재미를 끌어낸다. 물론 영국식 유머가 호불호가 갈리듯 이 영화의 재미 또한 호불호는 있겠다. 그래도 빌 나이 팬이라면 쟁여두고 보는 목록에 추가해도 된다.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스크래블Scrabble 게임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며, 스토리의 빈 공간을 채우듯 또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며 여운을 남기는 OST는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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