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병원이 무상 교육.. 전문직업 찾는 결혼이민자들 '희소식'

필리핀에서 시집온지 10년째인 로첼A 마나다 씨가 삼천포서울병원의 도움으로 간호조무사 시험에 합격했다. 전문직종에 취업을 꿈꾸는 지역의 다른 결혼이주여성들에게도 희소식으로 다가가고 있다.
필리핀에서 태어나 한국에 시집온, 남편과 두 아이를 얻고 한국인이 된 로첼A 마나다(33) 씨. 요즘 그녀 얼굴이 ‘싱글벙글’이다. 그녀가 꿈꾸던 ‘간호조무사’의 꿈이 눈앞에 다가왔기 때문이다.

지난 1년 동안 마나다 씨는 평범한 주부로 살면서도 틈틈이 간호조무사 과정을 공부했다. 그리고 지난 10월11일, 경상남도가 실시하는 간호조무사 자격시험에 응시해 당당히 합격했다.

앞으로 경남도가 마나다 씨의 간호조무사 응시자격 여부를 심사하는 과정이 남아 있긴 하지만 현재로선 자격증을 갖는데 큰 걸림돌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 가지 문제라면, 필리핀의 교육과정이 우리나라와 달라서 고교졸업까지 10년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점에 있어서는 다소 논란이 일 수 있지만, 교육과학기술부와 보건복지부에서 응시자격이 있는 쪽으로 유권해석을 내리고 있어 마나다 씨로선 다행이다.(관련기사1, 관련기사2)

예정대로라면 마나다 씨는 해를 넘기지 않고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손에 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녀는 벌써 취업 중이다. 비록 간호조무사 일은 아니지만 그녀에게 간호조무사의 길을 열어 준 병원의 도움으로 일을 시작한 것이다.

로첼A 마나다(33) 씨.
“시험은 합격했지만 아직 정식 간호조무사가 아니라서 간병인 일을 돕고 있어요. 그래도 너무 기쁩니다. 꿈이 하나씩 이뤄지는 것 같아요.”

13일, 경남 사천에 있는 한 병원에서 만난 로첼A 마나다 씨는 생기가 넘쳤다. 마침 환자들의 물리치료를 돕는 중이어서 이야기 나눌 시간이 넉넉지 않았음에도 그녀의 말과 행동에는 ‘신명’이 느껴졌다.

“아직 한국말이 서툴러서 사실 걱정이 좀 되긴 하는데, 그래도 자신 있습니다. 앞으로 요양보호사 자격증도 따고 해서 몸이 아픈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요.”

마나다 씨는 무엇보다 자신이 전문직업을 가질 수 있음에 만족스러워했다. 그녀에게 그런 길을 열어준 곳은 다름 아닌 삼천포서울병원이다.

지난해 이 병원과 사천다문화통합지원센터가 자매결연을 맺으면서, “결혼이주여성들도 전문직업을 가져야 생활이 안정될 수 있다”라고 이정기 센터장이 의견을 내자, 이승연 병원장이 “그럼 간호조무사 지원자가 있으면 우리가 무상으로 교육시키겠다”고 화답했다.

이때부터 마나다 씨를 비롯한 두 명의 여성이 전액 무료로 이 병원 부설 삼천포서울간호학원에서 간호조무사 과정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1년이 지난 뒤 비록 한 여성은 아깝게 떨어졌지만 마나다 씨는 당당히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결혼이주여성이 대한민국에서 전문직업을 갖는 일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흔치 않았다. 물론 마나다 씨처럼 필리핀에서 시집온 여성들은 영어강사로 일할 기회라도 있지만, 그 외 대부분 결혼이주여성들은 자국에서 나름의 고등교육을 받았다 하더라도 실력을 펼칠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은 까닭이다.

그나마 최근에 와서 이런 분위기에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마나다 씨가 국가자격시험에 합격해 간호조무사로 일할 기회를 얻은 것처럼 다른 여성들의 도전도 활발하다.

삼천포서울병원 류정훈 기획실장.
11월 현재 사천시가 파악하고 있는 결혼이주여성 28명이 각종 자격증에 도전하고 있다. 이들은 사천시로부터 적게는 수 십 만원에서 최대 120만원까지 교육비를 지원받거나 이미 받았다. 참고로 사천시는 올해 도비와 여성발전기금을 합쳐 1800만원을 결혼이주여성들의 취업 지원에 쓰고 있다.

보육교사, 한식조리사, 미용사, 방과후아동지도사, 영어독서지도사, 어린이영어지도사, 요양보호사 등 결혼이주여성들이 도전하는 자격 종류도 가지가지다. 이밖에 개인적으로 운전면허와 컴퓨터 관련 전문기술을 배우는 여성들까지 포함하면 직업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결혼이주여성들의 수는 더욱 늘어난다.

사천다문화통합지원센터 이정기 센터장은 결혼이주여성들의 취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결혼이주여성 대부분은 그 나라에서 교육을 잘 받은 훌륭한 일꾼이다. 여기에 이주노동자나 결혼이민자가 차지하는 비율도 제법 높아져서, 그들을 대상으로 새로운 일자리가 생길 가능성도 높아졌다. 따라서 그들이 기술을 익히거나 자격증을 가지게 되면 ‘외국어 구사’라는 장점까지 살려 경쟁력이 한층 높아질 것이다.”

마나다 씨에게 간호조무사의 길을 열어준 삼천포서울병원 측도 이 씨의 이런 생각에 동의하는 분위기다.

이 병원의 류정훈 기획실장은 “우리가 도움을 준 측면도 있지만 도움을 받으려는 기대감도 숨어 있는 게 사실”이라며 “병원을 찾는 외국인 환자들은 마나다 씨를 더 편하게 여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간호조무사에 도전하려는 이주여성이 있으면 후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나다 씨는 간호조무사 자격증이 나오기 전까지 간병인으로 일을 시작했다.
2009년 가을, 로첼A 마나다 씨의 간호조무사 합격 소식으로 사천지역 다른 결혼이주여성들도 취업 꿈에 부풀고 있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소식도 한 가지 들린다. 사천시와는 달리 다른 지자체의 경우 관련 예산을 책정해 놓고도 지출하지 못한 곳이 많단다. 게다가 대규모 토목공사에 나라 예산이 집중되는 통에 결혼이주여성의 취업 지원에 쓰였던 예산은 대폭 삭감되는 분위기라는 얘기다.

이 소식에 제2, 제3의 ‘로첼’을 꿈꾸는 결혼이주여성들의 한숨이 깊어질 것은 뻔하다. 그래서 ‘로첼’의 간호조무사 합격을 축하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울적해지는 그들이다.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