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수상한 봄날, ‘쑥쑥’ 털고 화려한 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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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수상한 봄날, ‘쑥쑥’ 털고 화려한 봄을
  • 이용호(사천시 향촌동)
  • 승인 2020.03.24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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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호(사천시 향촌동)
이용호(사천시 향촌동)

꽃샘 덕분에 봄은 느리지만 늘 야무지게 온다. 다독임이 있어 여느 계절보다 조근조근 찰 지게 와서 앙증맞게 계절을 이끈다. 비록 코로나19로 세파가 얼어붙었지만 어김없는 봄 앞에 이 또한 지나가리라 위무한다. 봄의 생명력은 그래서 우리의 희망이고 의지다.

두문불출에 심신이 뻐근해진다. 한갓 미물인 바이러스 앞에 만물의 영장이 이리도 위축되다니 부끄럽지만 이대로 질 순 없는 일. 문득 단군신화에 곰이 쑥과 마늘을 먹고 웅녀가 되었다는 전설이 생각났다. 쑥과 마늘 특유의 향미와 효능으로 악귀와 액운을 쫓아낸다고 했으니 이맘때 대표적 건강초인 쑥을 캐러 나서 본다. 

칼 두 자루 챙겨 들고 아내와 길을 나섰다. 차량 통행이 없는 양지바른 곳이라야 깨끗한 쑥을 만날 수 있다. 용두공원을 지나 산허리 임도에 올랐다. 매화가 저문 사이 산 위에는 생강나무가 노랗게 치장했다. 길섶 따라 제비꽃도 올망졸망 웃음 짓고 파란 하늘이 저수지에 몸을 누인 채 수양버들 새순의 잉태를 독려하고 있는 수상한 봄날.

양지바른 임도 사면 따라 파릇파릇 쑥들이 바다를 이루었다. 깡마른 낙엽 사이를 헤집으니 물오른 쑥들이 성장판을 자랑한다. 보드랍게 자란 줄기에서 향긋한 봄 내음이 비친다. 밑동을 잘라 코 끝에 대니 알싸한 쑥 향이 진하게 밀려온다. 오랜만에 밀착 대면하는 봄이다. 쪼그리고 앉아 정신없이 쑥을 캤다. 등 뒤로 따스한 햇살이 업힌다. 손안에 어느새 쑥 향기 가득하다. 아내는 저녁거리만큼만 선을 긋는다. 산수유 가득한 마을길 따라 봄은 민재봉으로 도움닫기를 하고 있다. 

유년의 봄날도 나물 캐는 일과였다. 누나 따라 들판에 나가 쑥이며 달래, 냉이, 씀바귀까지 두루두루 먹거리를 보탰다. 그러다 배고프면 진달래를 한 움큼씩 따먹기도 했으니 봄은 자연밥상이었다. 어머니는 그 쑥으로 버무리를 만들어 주전부리로 내놓으셨고, 쑥으로 향긋한 된장과 무침도 만들어 구수한 보리밥에 비벼 먹으며 가난했던 봄날의 일상을 달랬다.

아내는 이내 쑥 부침개를 만들었다. 바삭하게 구워진 부침개 사이로 쑥 향이 생생하게 솟구친다. 막걸리 한잔 빠질쏘냐. 이내 거실은 봄나들이다. 내친김에 저녁은 쑥국이다. 구수한 된장국물에 몸을 맡긴 쑥은 봄보다 더 푸르게 본색을 우려낸다. 앙증맞은 연초록 쑥 빛이 몸속에서 잠든 기력을 깨우는 듯 입안 가득 미소가 넘친다. 

이렇듯 쑥은 봄을 대변하는 건강초다. 동의보감에도 쑥은 따뜻하고 위와 간장 등 신체를 보하는 약재로 효능이 많다고 기록했다. 7년 된 병을 3년 묵은 쑥이 고친다고 할 만큼 약성이 강해 성인병 예방은 물론 특히 부인병에 특효를 지니고 있다. 옛날엔 코피가 나면 쑥을 비벼 막기도 했고 상처 난 부위에도 발라 지혈했다. 면역, 해독, 노화, 살균, 소화 등 다방면에 약성을 지닌 쑥은 그래서 봄철이 가장 화려하다.

쑥은 뭐니 뭐니 해도 쑥떡이 제격이다. 간이식으로 쑥버무리를 해먹기도 하지만 봄을 머금은 쑥떡이야말로 최고의 보양이 아닐까 싶다. 특히나 봄 도다리와 궁합을 이룬 도다리쑥국은 지금 남녘 어딜 가도 인기 메뉴다. 산란 후 담백해진 도다리 살점 속으로 알싸하고 향긋하게 스며든 쑥 향의 조화는 이 봄이 낳은 최상의 먹거리다. 향기로 말하는 봄은 쑥으로 땅의 기운을 나눈다. 힘들고 고단한 이 봄, 쑥처럼 쑥쑥 털고 일어나 화려한 봄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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