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20×15. 2020.
다시. 20×15. 2020.

세월이 흘렀다. 서른을 갓 넘긴 젊은 여자가 흰 무명옷 지어 입기를 즐겨 했다. 햇빛으로 직접 염색한 명주옷에 옥 노리개를 달고 머리 위에서 흔들리는 삼색 떨잠을 무척 좋아라했다. 대바구니에 찻잔과 아기자기한 차 도구를 담아 들고 모래강변 달빛 아래서 시를 쓰듯 차를 마신다. 봄에는 꽃그늘 아래 꽃잎을 띄우며 차 마시기를 즐겨 했고, 오색 다식을 만들어 늙은 도공이 빚은 투박한 접시에 올려놓고 눈으로 한참을 바라보았다. 어느 스님의 차밭에서 햇볕을 등에 지고 찻잎을 따고, 깊은 산골 주인장의 황토 방에서 찻잎을 덖기도 했다. 결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삼삼오오 다니며 소꿉놀이하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세월이 흘렀다. 사람들은 녹차보다 커피를 더 즐겨 마시며 커피콩을 볶고 커피콩을 갈고 커피를 내린다. 케냐AA, 만델링, 시다모, 예가체프... 검은 유혹에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어느 나라 수도가 코펜하겐이라는 것보다 로얄코펜하겐 잔의 푸른 염료에 매료되어 코펜하겐이라는 말이 더 익숙해져 버렸다. 손쉽게 테이크아웃 할 수 있는 커피를 친구보다 더 귀히 여기기도 했고, 사색하던 자리에서는 항상 진한 커피가 놓여 있었다.      

세월이 흘렀다. 습관처럼 가는 그곳에서는 항상 차를 내놓는다. 무쇠주전자에서는 찻물이 끓고 그 뾰족한 주둥이에서 나오는 김은 치열하다. 어른의 소꿉놀이 같다고 여겼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뜨거운 차를 마시니 몸이 반응을 한다. 참 묘하게 기분 좋은 온도다. 차향보다 몸의 온도에 매료되어 차를 마시고 있었다. 

오랫동안 묵혀 두었던 차 도구를 꺼내 바닥에 늘어놓고 한때 줄기차게 다녔던 도공의 가마를 생각했다. 앨범에 들어있는 사진만이 추억이 아니라 물건도 그렇다고 여겼다. 불현듯 새로운 소꿉놀이를 하고 싶었고, 누군가의 손에 이끌리어 차 도구 가게로 들어섰다. 온통 중국 냄새로 짙은 그곳에서 중국 산동성에서 보냈던 향수와 함께 뜨거운 보이차를 마시며 다시 그 차가 그리워졌다. 

새 찻잔과 다관을 끓는 물에 소독을 한다. 뜨겁게 끓여진 찻잔을 집게로 꺼내 하얀 면포로 그 물기를 닦아내니 손바닥에서부터 느껴져 오는 온도가 뜨거운 심장을 쥔 듯 두근거린다. 아, 또다시 시작이구나. 데워진 찻잔을 닦는다. 차 테이블을 만들고 그 위에 차 도구를 차려놓고 나의 공간에서도 찻물이 끓는다. 음악이 흐르고 이야기가 있고 사람이 있다. 

“차(茶)를 즐길 수 있게 되어 내가 더 기쁘지요.” 그 소리가 내내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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