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속 우리 문화 톺아보기>②
목조미륵보살반가상 앞에서 감동하는 일은 이제 그만두라!


“(광륭사 미륵상)의 얼굴 부분에 손대기 전 형(型)을 떠놓은 것이 도쿄예술대학에 보존되어 있다. 이것을 보면 현재의 얼굴과 다르며 한국국립박물관 불상(한국 국보 제83호) 얼굴과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다. 즉, 조선풍이었던 얼굴을 명치 수리 시에 일본풍의 얼굴 다시 말해 일본인이 좋아하는 얼굴로 고쳐 놓아 버린 것이다. ”
 
“像の頭部を型をとったものが東京の芸大に保存されている。これをみると現在の像の顔と異なっており、韓国国立博物館の像の顔に近い容相を示しているのである。つまり
朝鮮風であった顔を明治の修理のさい、日本風の顔、さらにいえば日本人好みの顔になおしてしまった。<아스카불에 보는 일본과 조선> 116-117쪽


일본 국보 제1호 목조미륵보살반가상(이하, 미륵상)의 얼굴이 수리되었으며 그것도 수리 전과 수리 후의 모습이 확연히 다르다는 말을 한 사람은 일본 미술사학자 나가이 신이치 교수이다.
 
고대 조선인이 만든 일본 국보 제1호 미륵상은 오래전부터 여러 논쟁 속에 휘말려 왔다. 《일본서기》등 역사적 문헌은 “신라에서 보내온 것”이라고 하여 이 불상이 신라인의 작품임을 증언하고 있지만 이를 두고 일본 쪽 학자들은 이해할 수 없는 변명을 계속 하면서 이 미륵상은 고대조선인이 만든 것이 아님을 필사적으로 연구(?)해 왔다. 그간 일본 학자들이 논란을 벌여 온 것을 다음 두 가지로 요약해볼 수 있다.
 
1) 누가 만들었나? 조선인이냐? 일본인이냐?
2) 재질이 무엇이냐? 적송(아까마츠)이냐? 녹나무(구스노키)냐?

그럼 먼저 불상 제작자에 대한 논쟁을 살펴보자.
 
1) 누가 만들었나? 조선인이냐? 일본인이냐?

이 미륵상은 일본서기에 신라에서 보내온 것이라고 했으므로 한국산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일본 학자들의 논쟁은 무의미하다. 다만, 만든 나라가 신라냐 백제냐에는 이견이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홍윤기 교수의 “홍윤기의 역사기행<79>교토 고류지” 글을 인용해서 정리해본다.
 
교토대학 사학과 우에다 마사아키(上田正昭) 교수는 "현존하는 미륵상의 양식은 신라계의 것이며, 신라에서 보내준 불상이라는 것을 전해주는 기록이 보이고 있다."라고 증언했다. 그 밖에 히라노 구니오(平野邦雄) 교수, 미스자와 스미오(水澤澄夫) 교수, 미즈노 세이치(水野淸一) 교수 등은 "적송 미륵상은 신라에서 보내준 것이며, 한국 국보 제83호인 금동반가상과 똑같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불상이 백제에서 건너왔다는 주장도 있음을 홍윤기 교수는 소개하고 있다.
 
도쿄대학 건축사학과 오타 히로타로(太田博太郞) 교수와 도쿄교육대학 미술사학과 마치다 고이치(町田甲一)교수는 공저에서 "미륵상은 광륭사 사찰 기록에 따르면 스이코왕(592∼628) 11년(603년)에 백제에서 보냈다.”라고 한다. 또한, 고니시 아키오(小西秋雄)도 미륵상은 백제에서 건너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미륵상을 둘러싼 논쟁 중의 하나인 신라산이냐 백제산이냐는 학자마다 주장하는 바가 팽팽히 맞서 좀 더 시간이 걸려야 정리될지 모른다. 다만, 아직도 일부 학자들이 일본산이라고 억지스런 주장을 하고 있으나 이 미륵상은 신라 또는 백제 중 한 나라에서 건너간 불상이며 만든 곳이 한반도라는 것이 정설로 굳어졌다.

여기서 재미난 사실 하나를 소개하겠다. 미륵상의 얼굴 개조 사실을 밝힌 미술사학자 신이치 교수의 경우이다.
 
이 사람은 1976년 <역사공론>6월호 <아스카불에 보이는 일본과 조선>에서 말하기를 “미륵상은 조선인이 조선 땅에서 만들어 가지고 왔다기보다는 조선인 1세대쯤 되는 사람이 일본 땅에 와서 일본 재료인 적송으로 만든 것 같다.”라고 했다가 30년이 지난 2006년 7월 ≪일본·아시아 미술 탐색≫에서는 많이 누그러진 자세로 “조선에서 만들어져 일본으로 가져왔다는 사람이 많다.”라고 말끝을 흐리고 있다. 


일본에는 고대 한반도로부터 건너간 많은 불상과 문화유산이 있다. 그런데 이런 사실에 대해서 필사적으로 감추거나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이유를 달아 “일본 것”으로 둔갑시키고자 하는 일부 학자가 있다. 또 그들은 어정쩡한 표현으로 말 돌리기도 예사로 한다. 가령 “이 미륵상은 신라 불상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아니라고 볼 수 없는 것도 아니라서...” 뭐가 어떻다는 것인지....이런 말꼬리 흐리기 작전에 넘어가면 안 된다.
 
2) 재질이 무엇이냐? 적송(아까마츠)이냐? 녹나무(구스노키)냐?

그간 일부 일본 학자들은 “광륭사 미륵상”을 일본인이 만든 것으로 둔갑시키려고 상당한 논문을 쏟아냈다. 신이치도 그 중 하나이다. 그런데 광륭사 미륵상을 만든 사람이 고대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뒷받침해준 것은 무엇보다도 불상 재료이다.
 
1951년 고하라 지로(小原次郞) 교수가 발표한 한 편의 논문은 종래의 일본제작설을 일시에 잠재웠다. 그는 “上代조각 재료 사적고찰” <불교예술 13호. 1951년, 일본>이란 논문에서 7, 8세기 일본 불상들은 “녹나무”인데 비해 미륵상의 재질은 “적송이다.”라는 것을 밝혀냈다. 그는 700여 불상의 나무 재질을 연구한 사람으로 이 분야에서는 최고 권위자이다.
 
정리해보면 “일본에서는 불상 재료로 적송이 안 쓰인다.”가 중요한 결론이다. 고하라 교수 자신은 한국에 두 번이나 방문하여 한국의 소나무 재료를 연구한 결과 이런 결론에 확신을 했다면서 이 책에서 “적송=조선” 등식을 확인해주고 있다.
 
미륵상은 일본인 얼굴로 바뀌었다
 
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 신이치는 그의 논문에서 미륵상 얼굴 수리 이야기를 비교적 정확하고 솔직하게 표현했다. 하지만, 이는 “미륵상의 진실”을 밝히려는 의도가 아니라 “얼굴이 개조되어 기쁘다.”를 말하고자 함이었다. 미술사학을 전공한 신이치의 “미륵상 얼굴성형”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표로 정리한다.


신이치는 <아스카불에 보이는 일본과 조선>이란 논문에서 미륵상이 원만히 수리되었으며 아주 흡족하다고 했다. 그는 분명한 어조로 불상 얼굴 개조사실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일본 국보 제1호 미륵상은 한국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명치시기에 얼굴 수리를 했다→일본인에게 사랑받는 얼굴로 바뀌었다
 
이런 신이치의 주장을 보면 광륭사 미륵상은 얼굴이 성형 수술된 것이 분명하며, 그것도 한국인의 얼굴에서 일본인의 얼굴로 바꾸어 놓았다는 것이다. 다음 사진을 한번 보자.

위 사진은 미의 비밀《美の秘密…二つの弥勒菩薩像》이라는 책에 나오는 수리 전의 미륵상 모습이다. 사진으로 볼 때 얼굴 모습에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뺨 부분도 도톰한 게 역력한 한국인의 모습이다. 그런데 왜 얼굴에 손을 댔을까? 만일 얼굴 손상이 있었다면 정확한 손상 정도를 밝혀야 한다. 그리고 피치 못해 복원을 하는 경우에도 이 사진을 토대로 얼굴 손상을 될 수 있는 대로 줄이면서 복원을 했어야 한다.


이 미륵상에 대한 복원이야기를 다룬 책이 《美の秘密…二つの弥勒菩薩像》이다. 이 책은 1977년 2월 11일 NHK 교양 특집 <미의 비밀>의 하나로 다룬 내용이다.
 
위 사진 속 미륵상 얼굴 앞에서 100여 년 만에 얼굴수리를 재현해 보이는 사람은 도쿄예술대학 교수 니시무라 코쵸(西村公朝)다. 그러나 이날 방송을 책으로 묶은 원고 어디에서도 불상 얼굴의 손상도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신이치는 위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명치시대에 이 상(불)은 수리되었으나 그때 수리에 손을 대기 전에 두부(얼굴포함 머리)의 형(型)을 떠놓은 것이 도쿄예술대학에 보존되어있다.(明治時代にこの像は修理されたがそのとき修理の手をくだす前に像の頭部を型にとったものが東京の芸大に保存されている。)
 
그렇다면 보존되어 있는 수리 전 얼굴형을 공개해야만 얼굴 성형에 대한 의심이 풀릴 것이다.

늦었지만 광륭사도 미륵상에 대한 자세한 정보 밝혀야

우리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광륭사! 이곳에 가는 목적은 단 한 가지 일본 국보 제1호 목조미륵보살반가상을 보러 가기 위함이다. 이 불상은 알려진 대로 고대 한국인이 만든 불상이라 더욱 애틋하고 국보 제1호라 더욱 관심을 갖는 불상이다.
 
이러한 지상 최고의 한국불상이 한국인의 얼굴에서 일본인의 얼굴로 개조되었다는 사실을 <광륭사> 안내책자와 누리집에는 단 한 줄도 밝히지 않고 있다. 국내 인터넷에 올라 와있는 글 그 어디에도 이런 내막을 알리는 내용이 없다.
 
미륵상에 관한 취재된 글 중에 제주인터넷뉴스 <일본속의 한민족 취재(3) - 광륭사> 장영주 칼럼 기사에는 “교수님의 강의에 <미술을 전공하는 일본의 어느 대학생이 목재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감상하다가 너무나 매혹되어 달려가 껴안으려다가 결국 불상의 손가락 하나를 부러뜨리는 소동을 일으켰다고 한다.>” 는 구절이 나온다.
 
이 이야기는 1960년 교토대학의 20세 학생이 일으킨 사건 곧 미륵상이 매우 아름다워 그만 자신도 모르게 껴안다가 미륵상 손가락을 부러뜨린 사실을 말한다. 일본에서는 이를 대서특필 했다. 유감스럽게도 당시는 한일수교 전이라 몰랐던 것인지 한국 언론은 보도하고 있지 않다. 다만, 손가락이 부러진 이 사건이 많은 누리꾼 사이에서 대단한 것인 양 인용과 재생산이 무한히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손가락 부러진 사건은 확연히 얼굴을 개조한 사건에 비하면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도 이 중요한 사실 곧 미륵상 얼굴 개조 사실에 대해 여태껏 확인도 안 해보고 있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지금 우리는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1. 도쿄예술대학에 본 떠 놓았다는 미륵상의 수리 전 모습을 공개하는 것이 마땅하다.
1. 수리 전과 수리 후의 모습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과정이 공개되어야 한다.
1. 이 미륵상 외에 다른 문화유산도 이렇게 손을 댄 것이 있다면 밝혀야 한다.
1. 광륭사는 미륵상의 얼굴 성형 사실을 분명히 안내책자에 넣어야 한다. <2편 끝>

다음에는 제3부 교토의 “기온마츠리” 편이 이어집니다. 

 

【글쓴이】

* 이윤옥 (59yoon@hanmail.net)(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 소장)

* 김영조 (sol119@empal.com)(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소장)


*<일본 속 우리 문화 톺아보기>는 김영조/이윤옥 두 분의 기고로 이루어집니다. 지난 번 '코무덤' 시리즈 이후 우리 문화 이야기를 계속 들려주시기로 한 두 분께 감사드립니다. 여기서 톺아보기는 순 우리말로 '샅샅이 뒤져 찾아보기'란 뜻입니다. -편집자- 

김영조.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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