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1941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건국강령’을 발표한다. 일제로부터의 독립이 다가오던 시점에, 독립 이후에 만들 나라의 모습을 그린 문서이다. 이 건국강령을 보면 선거권은 만 18세부터 보장되는 것으로 나와 있다.

이 건국강령의 내용은 2020년이 되어야 현실이 된다. 건국강령이 발표된 때로부터 무려 79년 만의 일이다. 헌법 전문에서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밝히고 있는 나라에서 늦어도 너무 늦었다. 

우여곡절 끝에 이번 4‧15 총선에서부터 만 18세 선거권이 도입된다. 축하하고 환영할 일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독립운동가들의 생각이 이제야 실현되는 것이고, 민주주의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진전이다. 당장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청년들이 생애 첫 번째 투표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일부 고등학교 3학년들이 투표권을 갖게 된다. 전국에 14만 명 정도다.
그런데 학생들이 투표권을 갖게 된 것에 과도한 걱정을 하는 분들이 있다. 게다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학교에서의 모의선거를 제한하는 조치까지 취했다. 

모름지기 교실과 정치가 가까워야 민주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다. 교실에서 정치에 관한 생생한 토론이 이뤄지는 것은 정치 선진국에서는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교실에서 실제 후보와 정당을 놓고 토론도 하고 모의선거도 한다. 미국의 초등학생은 올해 미국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 후보들을 놓고 찬반 토론을 하고, 모의투표까지 하게 된다. 미국만 하더라도, 이런 활동을 국가적으로 장려하고 있다. 이것이 민주주의 국가의 모습이다. 민주시민을 교육하는 교실에서 정치에 관한 얘기가 금기시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일제 강점기와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교실과 정치를 철저하게 분리시켜 놓았다. 교사의 정치적 권리를 박탈해서, 교사가 정치에 관한 얘기를 자연스럽게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청소년들의 정당 가입, 정치적 활동도 막아 놓았다. 

이제는 변해야 한다. 만 18세 선거권은 그 시작이다. 앞으로는 교사의 정치적 권리도 보장하고, 정치 선진국처럼 청소년들도 정당 가입을 하고 정치활동을 할 수 있게 보장해야 한다. 

그리고 학교에서 주권자교육을 제대로 해야 한다. 2015년부터 만 18세 선거권을 도입한 일본의 경우에는 지나친 규제 중심의 주권자교육을 해서 만 18세의 투표율이 떨어진 경험이 있다. 모의선거를 하는데, 가상의 정당‧후보를 놓고 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교육을 한 것이다. 그렇게 하는 주권자교육이 흥미로울 리 없다. 현실의 정당과 후보를 놓고 토론하고, 각 정당의 정책이 자기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놓고 토론해야 제대로 된 정치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이번에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었기 때문에, 선거제도에 대한 교육이 시급하다. 이것은 청소년들만이 아니라, 성인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1인 2표(지역구 후보에게 1표, 정당에게 1표)로 국회의원 선거를 실시한 것이 2004년부터지만, 여전히 정당투표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유권자들이 많다. 2016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유권자 의식조사를 했을 때에도 39.6%의 유권자들이 1인 2표제에 대해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이처럼 유권자가 투표 방식을 잘 모르도록 방치하는 것은 선거관리위원회의 직무유기이다. 의석배분의 구체적 방법까지는 모르더라도 정당투표의 중요성과 비례대표제의 취지 정도는 적극 알려야 한다. 그것이 헌법기관인 선거관리위원회가 해야 할 최소한의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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