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삼조 시인.
정삼조 시인.

24절기의 시작이기도 하고 봄이 왔음을 알린다는 입춘(立春)이 지나 다음 절기인 우수(雨水)도 지냈건만 나라 안팎이 ‘코로나 19’로 뒤숭숭하니 영 봄다운 봄이 아니다. 옛사람의 시구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네’를 생각해 보며 새삼 입춘날 출입문에 써 붙이는 입춘서(立春書)를 글로나마 되새겨 봄으로써 봄기운을 애써 불러들이고 싶어진다.

입춘서의 대표로는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 입춘에 크게 좋은 일이 생기고 따스함과 함께 경사가 많기를 바람’을 꼽을 수 있겠다. 입춘은 봄의 시작이기도 하고 따뜻한 기운이 강해지는 시기이니만큼 좋은 기운을 집안에 마땅히 받아들여야 하리라는 소망을 나타낸 것이리라. ‘소지황금출(掃地黃金出) 개문백복래(開門百福來) - 마당을 쓸면 황금이 나오고, 문을 여니 온갖 복이 들어온다’는 입춘서는 지나치게 욕심스러운 것일까. 나쁜 귀신을 쫓는다는 옛 설화 속 두 인물 ‘처용(處容) 비형(鼻荊)’을 대문에 써 붙임으로써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자 하는 입춘서도 있다. 나고 들 때마다 쳐다봄으로써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자 하는 소망을 담은 ‘화복무문(禍福無門) 유인소소(唯人所召) - 화와 복은 문이 있어 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사람이 불러오는 것’이라는 입춘서는 거듭 새겨볼 만한 뜻을 지녔다. 

뜻이 상반되는 두 입춘서의 내용도 있다. 먼저는 ‘수여산(壽如山) 부여해(富如海) - 산처럼 오래 삶과 바다만큼 부유함’이다. 사람들의 일반적 소망을 담은 비교적 평범한 내용이라 할 것이다. 다음 것은 ‘부즉다사(富則多事) 수즉다욕(壽則多辱) - 부유하면 귀찮은 일이 많고 오래 살면 욕된 일이 많다’이다. 부유함을 지나치게 추구함으로써 자신을 괴롭히는 일이 없어야겠다는 결의와 오래 살수록 몸가짐에 더 조심해야 하리라는 다짐이라 하겠다. 이 ‘부즉다사 수즉다욕’은 원래 ‘장자’라는 책에 나오는데 거기에서는 공자가 성인으로 받드는 요임금의 말, 곧 ‘부유함과 장수함을 굳이 바라지 않겠다는 것’을 공격하는 내용으로 소개된다. 부유하면 그 재물을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주면 될 것이고 편안하게 오래 살다가 신선이 되면 될 것을 공연히 오래 사는 것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같은 말을 두고 이렇게 해석이 갈리는 일이 있음을 보이는 한 예이기도 하리라.

입춘날 세시풍속으로 ‘적선공덕행(積善功德行)’이 있다는 것도 유념할 만하다. 입춘이나 대보름날 전날 밤에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일을 해야 일 년 내내 액을 면한다는 풍속인데 이 일은 아무도 모르게 해야 효력이 있다는 금제가 붙어 있다. 이날에는 ‘일곱차리’라는 풍속도 있었는데 무슨 일을 하든지 아홉 번이나 아홉 가지 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지런함을 바탕으로 해서 한 해를 무사히 보내자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되겠다.

뒤숭숭한 속에도 매화는 활짝 피었고 목련의 꽃봉오리도 통통히 물이 올랐다. 동백도 피었고 개나리며 진달래가 곧 뒤를 이을 것이다. 봄의 좋은 기운으로 기지개를 켜 보고 힘을 합쳐 나쁜 기운을 몰아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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