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지푸라기라도 잡고싶은 짐승들' 포스터.
'지푸라기라도 잡고싶은 짐승들' 포스터.
 
요즘처럼 영화 개봉 시기를 예측하기 힘든 적이 있었던가. 역병에 대한 두려움과 이단에 대한 혐오가 전염병보다 더 무서운 공포로 떠도는 요즘, 아무리 ‘운칠기삼’이라지만 개봉작이 걸리면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 든다. 천만을 훌쩍 넘길 거라던 <남산의 부장들>이 500만을 못 넘기고 막을 내렸고, 개봉 시기를 살피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이하 지푸라기)는 예정보다 1주일 늦춰 개봉했다. 박스오피스 1위라지만 경쟁작보다 더 무서운 전염병 때문에 관객 수는 예년에 비해 현저히 줄었다. 코로나 19가 어서 진정되어 영화관에서 마스크 벗고 웃고 울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지푸라기>는 일본 작가 소네 케이스케의 동명의 추리 소설이 원작이다. 원작의 탄탄한 서사와 리듬감, 허를 깨는 반전을 한국적 상황으로 끌어오면서 어떻게 각색했느냐가 원작과의 비교를 넘어설 수 있는 열쇠인데 일단 각색은 기본 이상은 했다. 원작 소설을 본 관객들이라 하더라도 소설과는 다른 재미를 느낄 수도 있겠다. 인물 설정이나 비중, 결말도 소설과는 다르다. 주연이 8명이나 되니 어수선할 법도 한데 기우를 말끔히 걷어내고 물고 물리는 역동적인 앙상블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8명의 주인공들이 목숨 걸고 차지하고자 하는 ‘돈 가방’은 영화의 그 어느 인물보다 존재감이 확실한 캐릭터다. 누군가가 넣어둔 라커 속의 ‘돈 가방’은 돈 냄새를 맡은 인간 군상들 사이를 유영하면서 때로는 블랙코미디를, 때로는 피 냄새 진동하는 호러를 연출해 낸다. 저마다의 이유로 벼랑 끝에 내몰린 자들에게 ‘돈 가방’은 탐욕과 집착의 대상일 수밖에 없는데 그 간절함이 속도감 있는 구성으로 이야기를 부각시킨다.
 
특히 영화는 전도연의 등장 전과 후로 현저한 온도차를 보이는데, 그녀가 등장하는 중반 이후 영화는 기다렸다는 듯이 속도감을 낸다. 자신의 첫 장편 데뷔작을 직접 각색한 김용훈 감독의 캐릭터 배치와 서사의 완급을 조율하는 능력이 빛을 발하는 대목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거부할 수 없는 가차임이 분명한데, 사람을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데에는 돈의 역할은 충분 요건이지 필수조건은 아니다. 이리저리 흉흉한 시기에 돈을 붙들고 파국으로 달려가는 영화 속 인물들을 보면서, 돈은 좀 없어도 일상의 평화가 주는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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