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섭의 배우며 깨달으며]

송창섭 시인.
송창섭 시인.

시詩를 일러, 정서나 사상 따위를 운율을 지닌 함축적인 언어로 표현한 문학의 한 갈래라 정의합니다. 시의 특징이라면 함축과 상징 그리고 비유 따위가 있습니다. 시가 지닌 독특한 색채와 향기에 시인의 개성이 강하게 어우러진 작품들은 때로 이해하기가 몹시 어렵다는 평을 듣기도 합니다. 난해한 시들로 인해, 시는 시를 쓰는 그들만의 영역에 갇힌 그들만의 놀이라는 비판을 받는 요인이 되기도 하지요. 이는 시를 사랑하는 독자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고 거리감을 두거나 외면해 버리는 안타까운 현상으로 이어지곤 합니다. 

그럼에도 나는 말합니다. ‘밥맛으로 배가 부르고 시맛으로 영혼이 부르고 술맛으로 사람이 부르다’고요. 배가 고프면 밥맛으로 채우고 영혼이 고프면 시맛으로 채우고 사람이 고프면 술맛으로 채우라는 겁니다. 술맛과 친하지 않으면 차茶맛인들 어떻습니까. 딱딱하고 읽기 불편한 시가 있는 반면에 재치 있고 의미 있고, 발상이 깜찍하고 놀라운 시들도 있습니다. 누구든 홀쭉해진 영혼을 벗겨 내고 마하트마(Mahatma 위대한 영혼)의 세계로 나아가길 원한다면, 소갈비 뜯듯 시갈비를 뜯어 시맛에 흠뻑 빠져 보면 어떨지요. 

“한밤 // 울면서 / 우사 밖으로 나온 소들은 / 이곳에 묻혔습니다 // 냉이는 꽃 피면 끝이라고 / 서둘러 캐는 이곳 사람들도 / 여기만큼은 들지 않습니다 // 그래서 지금은 / 냉이꽃이 소복을 입은 듯 // 희고 // 머지않아 자운영들이 와서 / 향을 피울 것입니다” - 박준 《문상》

사람들은 한밤중에 소들을 끌고 나와 웅덩이로 내몰고는 생매장을 합니다. 이른바 살처분이란 것이지요. 상상만으로도 끔찍합니다. 무슨 영문인지 전혀 모른 채 소들은 죽임을 당합니다. 입발굽병이라고도 하는 구제역口蹄疫에 걸렸기 때문이지요. 현재로선 마땅한 치료 방법이 없으니 앞으로가 더 큰 걱정입니다. 

당장 급한 일은 자의든 타의든 지은 죄 없이 애매하게 죽은 소들의 원혼을 어르는 일입니다. 누가 선뜻 자청해 나서는 이가 있을까요. 가만 보니 이미 소복을 입고 빈소를 지키는 이가 있습니다. 기특하게도 냉이꽃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이웃에 자리한 자운영이 ‘관대한 사랑’이란 꽃말에 걸맞게 달콤한 향을 피웁니다. 가엾은 짐승들의 진혼을 위해 절묘하게 구색을 갖췄습니다. 말을 주고받을 수는 없지만 그들끼리는 이미 대화의 장벽을 뛰어넘은 소통의 한 울타리에서 서로 의지하고 격려하며 살아왔던 것이지요. 자연에 무지하거나 겸손하지 못하고 자연을 경멸하는 인간에게 자연은 오히려 웅대한 자비를 보여주는 장면인 셈입니다. 

시인의 목소리가 여유롭고 차분합니다. 자연을 읽어 내는 힘에 끈기가 묻어 있습니다. 모든 삶은 제각각 독립적인 형태로 마치 무관한 듯 보이지만, 실처럼 얽혀 있는 조화로움과 인연이 그 간극을 메우고 있습니다. 이를 두고 관계라 이릅니다. 소와 부정不淨한 인간과 냉이꽃과 자운영과 이를 바라보고 껴안는 시인은 순환의 고리처럼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인간이 저지른 과오를 우회하여 선문답禪問答으로 일깨우고 있습니다. 자연이 안겨 주는 무언의 담담한 질타가 인간들이 걸어온 지난 발자취를 냉엄하게 되돌아보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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