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작은 아씨들'

'작은 아씨들' 포스터.
'작은 아씨들' 포스터.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4관왕을 하면서 올해 아카데미를 향한 시선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더불어 작품상 후보로 오른 <포드 V 페라리> <아이리시맨> <조조 래빗> <조커> <작은 아씨들> <결혼 이야기> <1917> <원스 어폰 어 타임.. 헐리우드>를 보면서 <기생충>이 얼마나 대단한 성과를 거둔 것인지 감탄하게 됐다. 이 때문에 <작은 아씨들>에 대한 평가도 느긋하면서도 추켜세우기에 주저함이 없어진다. 그래야 <기생충>이 더 대단한 작품이 되니까. 

고전 명작의 강점은 손쉽고 낭만적으로 추억을 소환하면서 보편적 감정을 이끌어내는 것이 수월하다는 데 있다. 루이자 메이 올콧의 <작은 아씨들>은 국적을 불문하고 소녀시절 혹은 소년시절에 한 번쯤은 손에 쥐고 가슴 설렜던 기억이 있는 클래식이다. 따라서 너무나 유명하고 사랑스러우며 감동적인 이 클래식을, 웬만한 자신감 없이는 현대로 불러내는 것은 힘든 법이다. 더구나 이미 수많은 각색자와 감독들의 손을 거쳐 영화화된 전력이 있지 않은가.

그러나 <기생충>을 빛나게 하기 위해 억지로 추켜세우지 않아도 <작은 아씨들>은 충분히 훌륭한 작품이다. 그레타 거윅 감독은 고전의 리메이크라는 불안을 기우로 돌리면서 ‘재해석은 이런 것이다’라는 멋진 방법론을 보여준다. 명작의 틀을 해치지 않으면서 시대를 아우르는 여성 서사를 깔끔하게 완결해 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강점은 캐릭터를 구현하는 시각이다. 소설이나 이전 영화의 캐릭터들에 비해 그레타 거윅의 <작은 아씨들>은 매우 입체적이며 현대적이다. 고단한 삶의 어느 한 지점에서 주체적 미래를 살고자 하는 자매들의 이야기는 생생한 캐릭터와 이야기 속에서 큰 공감을 끌어낸다. 특히 지금까지와는 다른 막내 에이미는 굉장히 매력적이다. 재미와 감동 선명한 주제의식까지 고루 갖춘 여성영화이자 가족영화는 이런 것이라고 전형을 완성했으니, 앞으로도 꾸준히 계속될 리메이크의 홍수 속에서 최소한 <작은 아씨들>을 만들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벽이 될지도 모르는 굳건한 레퍼런스로 작용할 것 같다.

남성중심의 19세기 여성작가의 원작을 21세기에 안착시킨 힘은 원작의 완성도와 캐릭터를 재해석해낸 감독과 배우의 공이다. ‘원하는 삶을 살라’는 웅변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는데, 그 주체적 선택은 예나 지금이나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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