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호흡하고, 밥 먹고, 배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는 살 수가 없는 세상이다. 꼭 필요한 양의 쓰레기, 재활용이 되는 쓰레기, 자연으로 쉽게 돌아가는 쓰레기이면 좋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게 현실이다. 여기엔 정부도 한몫하고 있단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왜일까?

먼저 종량제 쓰레기봉투를 보자. 정부는 또는 지자체는 이 종량제 봉투를 돈을 받고 팔고 있다. 이것은 마치 한쪽으론 담배를 팔고, 다른 쪽으론 금연을 권하는 것처럼 이율배반이다. ‘돈을 지불하고 봉투를 샀으니 나는 얼마든지 쓰레기를 버려도 된다.’ 이런 생각을 조장하는 게 지금의 제도인 탓이다. 쓰레기의 양 만큼 돈을 지불했으니, 쓰레기를 버리는 행위가 범죄도 아니고, 손가락질 받을 일도 아닌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고 있다.

‘친절한 금자씨’라는 영화에서 동료 죄수에게 독극물을 조금씩 먹여서 복수를 하는 것과, 인류의 행위들로 지구의 다른 생물과 심지어 인간까지 죽어갈 것임을 알면서도 대안을 찾고자 노력하지 않는 것, 과연 무엇이 다를 수 있을까?

나는 비용이 들더라도 조금 더 책임감 있는 쓰레기 정책을 펼쳤으면 한다. 우선 모든 시민은 그 쓰레기가 배출되는 주소지에서 자신이 얼마만큼의 쓰레기를 버리는 지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도 확인할 수 있고 스스로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스스로도 자신을 통제할 수 있으리라. 개인이든 기업이든 마찬가지다.

구역을 정해 분리배출 수거소를 설치하고 각 가정에는 쓰레기 배출량 확인카드를 발급해 쓰레기 총량을 관리하자. 중량보다는 부피가 관리되어야 할 것이지만, 두 가지가 다 계량될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다. 쓰레기를 줄이는 쪽엔 인센티브를 주고, 쓰레기를 많이 버리는 쪽엔 패널티를 주자. 이를 위해 쓰레기 수거 인력을 더 늘리고, 그들에게 지위와 권한을 높여 주자. 재활용 분리수거에도 더욱 공을 들이자.

결론적으로 배출되는 쓰레기 양을 측정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전염병도 결국은 인간의 행위와 무관하지 않다. 자기 배설물도 스스로 관리 못하고, 성인 유아와 같이 행동하는 인간의 습성을 고치지 못하면서 다른 무엇을 논한단 말인가.

인류 종말의 재앙을 외치는 소리를 흘려 듣지 말자. 그 소리가 단지 사이비 종교 집단의 헛소리만은 아닌 듯하다. 반성에 따르는 실천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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