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섭의 배우며 깨달으며] - 재개발은 지배 계급의 꽃놀이패다

▲ 송창섭 시인.

바둑에 패覇라는 게 있습니다. 패를 만든 쪽은 패가 이기거나 지거나 상관이 없지만 상대는 패의 성패成敗에 따라 큰 손실을 입을 수 있습니다. 바둑의 흐름을 바꾸기도 하는 이러한 패를 유리한 입장에서는 꽃놀이패라 이릅니다. 어떻게 하든 손해 볼 것이 없는 상황을 비유적으로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쓰임새를 헤아리면 이름이 좀 얄궂지 않은가요. 

용산 4구역의 재개발 정책은 유산계급, 지배세력, 권력층이 노린 꽃놀이패와 다를 바 없습니다. 어쩌면 그보다 권모술수나 꼼수, 사기가 더 적합한 표현인 지도 모르겠습니다. 

보통 사람으로 살기를 바랐던 고 윤용헌 씨의 절규가 개발이 가진 위선적 의미를 잘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개발開發은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을 위한 개발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 몰아내고 돈 많은 부자들을 들어앉히는 개발이에요.” 가난을 대물림할까 두려워 강원도 고향땅을 떠나 수원으로 온 지 스무 해를 한동네에 살던 고 한대성 씨는 먹먹한 가슴을 쥐어뜯으며 말했습니다. “1월 20일 절망스럽고 두려운 밤이다. 세상이 무섭다. 나는,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아들이 좋아하는 야구의 꿈을 접게 해 마음고생이 심했지만, 아들과 일식당을 함께 꾸리는 꿈을 간직했던 고 양회성 씨는 나직이 읊조렸습니다. “당신한테 미안하다. 여태까지 고생만 시키고…….” 고 이상림 씨의 며느리 정영신 씨는 결혼 1주년임에도 재개발이라는 괴물과 싸우기 바빴다며 고충을 토로했습니다. 그리고 진실을 포기하지 않는 믿음을 밝힙니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마태복음 10:26)” 

철거를 당하고 또다시 철거를 당한 뒤 천막에 살았던 고 이성수 씨가 생전에 아들 상현에게 한 눈물겨운 고백이 앞을 가립니다. “즉석생과자와 황금붕어빵을 팔았어도 아버지는 평생을 정직하게 살려고 애썼다. 정직한 게 죄라면 우리가 지금 벌을 받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상현은 말했습니다. “우리 가족에게 겨울은 항상 추웠습니다. 하지만 좁은 냉동실 안에 계시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그때마저 그립습니다. 춥지만 따뜻했던 그 천막이 그립습니다.” 

생존자 이충연은 망루에서 뛰어내려 부상을 입고는 구속되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어서 망루로 올라가는 거잖아. 살아보자고.” 

이들이 생활하고 잠을 자면서 한결같이 품은 건 소소몽(小素夢 작고 소박한 꿈)이었습니다. 

아쉽게도 만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고 김남훈 경사의 고귀한 희생도 우리는 저버릴 수 없습니다. 그도 한 가정의 귀한 자식이었습니다. 아들의 죽음을 겪은 어머니는 충격적인 슬픔과 후유증으로 심장병과 우울증이 생겨 치료를 받았지요.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1년의 지루한 시간을 끈 뒤에야 용산범국민대책위원회와 정부는 유감을 표명하는 사과와 함께 보상비 지급에 합의해 장례식을 치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훗날 진압 경찰과 희생자 가족들은 서로의 시시비비를 젖혀 두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화해하고 용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유가족들이 안은 그리움이란 상흔은 어쩌지요.

역사를 잊은 민족의 삶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현재도 미래도 희망도 다 죽었기 때문입니다. 끊임없이 대형 참사가 발생하고 반민주적 폭력이 되풀이될 때마다 재발 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공언을 언제까지 믿고 받아들여야 할지요. ‘용산 참사’ 희생자들의 거룩하고 혹독한 정신만큼은 헛되지 않도록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두 눈 부릅떠 현실을 직시해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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