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남산의 부장들>

▲ '남산의 부장들' 포스터.

박통이라는 독재자가 사망한 지도 40년이 흘렀다. 세대가 한 번 바뀌고 강산을 무려 네 번 바꿀 세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뇌 효과는 지독해서 신화는 여전하다. 그의 비극적 결말 때문에 신화는 더욱 생명력을 가지는 지도 모른다. 더불어 엄청난 사건을 일으킨 당사자들의 어처구니없는 행보와 사후 처리가 음모론을 만들고 불을 지폈다. 그래서 10·26은 창작의 소재로 삼기 좋은가 보다.

이런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어이없는 사건 중 하나인 10·26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또 한 편 만들어졌다.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 사람들> 이후 15년 만이다. 세월이 흐른 만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져서인지 아니면 여론의 부침을 감당하기 힘들어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역사에 대한 견해를 삭제하고 정치 심리 스릴러로 포장을 했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관계도에만 집중하는 이 방식이 꽤나 새로운 접근이어서 몰입감 높은 흡인력이 생겼다.

이 영화는 10·26 사건이 발생하기 40일 전부터 사건 당일까지의 일을 재구성한 내용으로 등장인물의 각자 입장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다 응시하는 지점은 다르다. <내부자들> <마약왕>으로 근현대사를 지그시 바라보는 우상호 감독이 닿은 곳은 부마민주항쟁이다. 대한민국의 민주화 역사에 분기점이 될 몇몇 사건 중 독재자의 유신정치를 종식시킨 부마민주항쟁은 핵심 중 핵심이다. 우상호 감독의 <남산의 부장들>은 10·26 사건을 전면에 내세워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주변 상황을 고려하게 만들었다. 그것도 정치적 견해는 쏙 빼고, 논란이 될 인물에 대한 영화적 캐릭터 구축은 지극히 건조하게 해서 집중포화도 피했다. 흥행과 작품성을 동시에 획득한 영리한 선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감독이 아니라 배우의 영화다.

잘 만든 군상극은 대체로 감독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돌아간다. 강한 캐릭터가 많이 등장하는 만큼 모든 캐릭터를 돋보이게 만든 감독의 역량이 빛이 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산의 부장들>은 요즘 식으로 말해서 ‘배우가 열일했다’는 표현이 정확할 만큼 명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인다. 이성민, 곽도원, 이희준과 같은 배우들의 열연은 두말할 것도 없고, 특히 이병헌의 연기는 타이틀을 하나 새로 달 것 같다. <파이란>의 최민식, <박쥐>의 송강호, <박하사탕>의 설경구처럼 <남산의 부장들>의 이병헌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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