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삼조 시인.

음력을 썼던 옛날로 비추어 보면, 정식으로 경자년을 맞는 설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지금도 다들 설맞이에 나름 분주하겠지만 지금보다 국민소득이 훨씬 못 미치던 시절이 훨씬 명절다운 분위기가 넘쳤다는 생각이 든다. 먹는 것, 입는 것이 변변치 못했던 시절이라 그런지 집집이 마련한 모처럼 넉넉한 음식과 일 년에 두어 번 입어보는 새 옷이 마음을 들뜨게 했으리라. 자가용이 많지 않았던 시절에는 명절 차표가 주요 뉴스거리가 되었을 만큼 명절에는 고향에 돌아가 부모 형제가 모이는 것도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멀리 있든 한집에 있든 명절에 사람들을 한곳에 불러들이는 열쇠의 주요한 한 축은 제사(祭祀)가 담당했다. 이것은 연륜과 그로 인한 전통의 힘이었다. 온 집안사람들이 종가 혹은 큰집에 한데 모여 우선 지금의 삶을 있게 하신 조상님께 예를 다하고 이어 살아있는 사람들이 서로의 안부를 순서대로 확인하는 세배를 한 것이었다. 이 특별한 의식에서 소외되거나 빠지는 일은 참으로 피하고 싶은 일이었으리라. 그 집안의 한 일원이라는 것에 보이지 않는 자부심이랄까 아니면 끊을 수 없는 연대감이랄까, 그도 아니면 막연한 귀소본능(歸巢本能)이라도 느껴서일 것이다. 

이 전통이 요즘 와서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제사를 먼 외국의 관광지에서 지낸다거나 제사 음식 일습(一襲)을 주문해 마련한다거나 하는 소식들이 들리더니 급기야는 명절 제사를 지내지 않겠다는 말까지 나온다. 세상이 바뀐 탓이 크다. 대가족 제도가 유리했던 농경사회의 전통은 이제 유지되기 힘들다, 고향을 지키고 계신 노부모들도 차츰 작고하시고 있다. 도시에 있는 바쁜 자식들의 일정을 위해 부모가 자식을 찾아가는 역귀성(逆歸省)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그래도 제사 지내지 않는 사람보다 더 많은 사람이 제사를 지낸다. 꼭 복을 받자는 것이 아니라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저승 세계에 계신 조상님을 위해 제사를 지낸다. 조상님이 실제 음식을 드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제사 지내는 사람이 더 잘 안다. 그 음식은 제사 지낸 자손이 모여 오순도순 먹고 때로 이웃과도 나눈다. 

널리 알려진 제사 이야기 한 토막. 황희 정승에게 한 사람이 찾아와 물었다. 오늘이 제 아버지 제삿날인데 제집 암소가 새끼를 낳았지만 그래도 제사는 지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황희는 당연히 그래야지 하고 보냈다. 다른 날 한 사람이 찾아와 묻기를 암소가 새끼를 낳았으니 이런 날은 제사를 지내지 않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황희는 제사 지내지 않는 것이 옳겠다 하고 보냈다. 이를 지켜본 부인이 한마디 했다. 같은 일에 판단이 다르니 어쩐 일이냐는 것이다. 황희의 답은 이랬다. 제사를 지내고 싶어서 묻는 사람과 지내고 싶지 않아서 묻는 사람이 있기에 그 사람들의 희망에 따라 답을 한 것이라고.

제사를 지내는 문제는 마음에 달린 것이다. 어느 조상이 어느 후손이 미워 때로는 복을 주고 때로는 화를 줄 것인가.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근본을 어찌 생각할 것인가에 달린 문제일 따름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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