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해치지않아>

▲ '해치지않아' 포스터.

<달콤, 살벌한 연인>, <이층의 악당> 등에서 제법 훌륭한 코미디를 보여준 손재곤 감독, 숙성기간이 필요했었던 건지 꽤나 오랜만에 돌아왔다. 뛰어난 각본가이기도 한 그는 하고 싶은 이야기와 관객의 요구를 잘 버무리는 연출로 인정받았는데, 준비하던 작품이 엎어진 건지 어찌 된 건지 근 10년 만의 컴백 작품으로 선택한 것은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해치지않아>다. 망해가는 동물원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손재곤 감독의 장기는 코미디 영화의 재료인 위트와 유머, 페이소스를 이리저리 다른 방식으로 잘 다룬다는 점이다. 특히 냉탕과 온탕을 넘나들며 절묘하게 수위 조절을 하는 재기 발랄한 대사는 그의 영화에서 재미를 책임지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이런 이른바 ‘대사빨’은 <해치지않아>에서도 여전하다. 언어를 다루는 재주는 녹슬지 않았다. 전작들과 차이가 있다면 세월의 흐름을 상기하듯 따뜻하고 노련해졌다. <달콤, 살벌한 연인>에서 <이층의 악당>을 보는 재미는 일취월장을 발견하는 것이었다면 <해치지않아>는 슬슬 연륜의 무게를 견디며 특유의 손재곤표 코미디의 진화를 보는 재미다. 눈이 반짝 뜨이는 경쾌한 감정적 자극이나 기교는 줄었지만 삶을 가능하게 하는 주변 요소를 보는 시야가 넓어졌다. 

아무리도 더러워도 참고, 속은 썩어 문드러지더라도 웃는 얼굴로 상대를 마주해야만 하는 현대인들은 저마다 최소 하나씩의 가면은 가지고 산다. 소소한 반칙도 하고 적당히 줄타기도 하면서 하루를 버틴다. 행여나 누가 비겁하다고 손가락질할까봐 두려워하면서도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결국 나만 손해를 보게 된다는 변명과 핑계로 타협하며 버틴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게 차라리 동물의 탈을 쓰고 있는 게 낫다. 하지만 이런 부끄러운 감정을 대놓고 강조하질 않으니 저자극 순한 맛이 되었다.

이 때문에 영화적 재미도 떨어졌다는 게 아쉽다. 그 어느 누구도 해치지 않지만, 손재곤표 코미디 특유의 쌉싸름한 신랄함을 기대하고 갔다가 실망했다는 소리가 나올 만큼 심심하기 그지없다. 이는 아쉬움의 표현일 뿐, 사전 정보 없이 착한 코미디를 기대하고 간다면 안심할 수 있는 웃음과 날카로운 통찰력에 감탄하고 나왔을 터다. 자연과 인간, 사회문제들을 다루는 시선은 냉정하되 따뜻한 감성은 잃지 않는데, MSG로 칠갑을 한 음식에 길들여져 있는 입맛에 착한 코미디가 잘 버틸 수 있을까가 사실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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