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닥터 두리틀>

▲ '닥터 두리틀' 포스터.

찌지지징~하는 모뎀 접속 소리와 함께 소통하던 통신 시절에 만났던 사람 중 적당히 충전한 지식을 질소 과자처럼 엄청나게 과대 포장하던, ‘돌리틀’이라는 채팅명을 쓰던 이가 있었다. 눈치는 또 기가 막힐 정도로 빨라서 자신에 대한 호불호를 순식간에 캐치하고는 편 가르기를 하는 통에 분란이 끊이질 않았다. 이 탓에 어릴 때 좋아하던 동화 속 캐릭터가 아직까지 비호감이다. 그런데 만인에게 아이언맨으로 사랑을 받은 로다주(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두리틀’의 역할을 한단다. 그래서 메인 카피도 ‘로다주 is 닥터 두리틀’이다. 돌리틀의 부정적인 감정이 로다주 덕에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을까.

<닥터 두리틀>은 원작인 동화가 가진 장점과 이를 스크린으로 옮겼을 때의 단점을 아주 정직하게 노출한다. 한마디로 착해도 너무 착하다. 배달 음식에도 ‘신계의 매운맛’이라는 자극적인 메뉴가 등장하고 막장을 넘어 끝장을 보자는 기세로 달려드는 드라마도 넘쳐흐르는 시대에 이런 무자극이라니. 그래서 한편으로는 신선한 감도 있다. 마음 한 켠이 따뜻해지는 걸 보면 <닥터 두리틀>은 디즈니표 가족영화라는 포지션을 분명히 하고 만든 게 역력히 보인다. 다만 부족한 개연성과 쉬지 않고 달려가는 산만한 스토리는 영화적 약점이지만 전체적으로 단순한 스토리 구조는 주제를 강화하는데 효과적인 면도 있다. 복잡한 설계나 이미지 없이 상처받은 사람과 동물들이 마음을 나누면서 성장한다는 주제가 선명하니 말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캐릭터들의 환상적인 조화를 꼽을 수 있다. 아이언맨 수트를 벗고 동물의 목소리를 듣는 두리틀로 돌아온 로다주는 동물 어벤져스와 환상적인 케미를 자랑한다. 더불어 라미 말렉, 마리옹 꼬띠아르 등 역대급 보이스캐스팅을 자랑하는 배우들의 목소리 연기도 영화에 생기를 불어 넣는다. 그들이 연기하는 동물 CG는 정말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사랑스럽다. CG도 스케일을 키우거나 자극적인 스케일 불리기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슴슴함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 같아서 무공해 이미지와도 딱 어울린다. 

유심히 보면 이번 디즈니표 <닥터 두리틀>은 인간 중심의 세계관이 아니라 인간 따로 동물 따로라는 다원적 세계관을 기본으로 한다. 사실 그동안 디즈니 세계관은 지탄받아 마땅한 내용이 많다. 인종차별을 당연한 듯이 드러냈었고, 실제로 디즈니 본인이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었던가. 그랬던 곳이 상전벽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많이 변했다. 바뀌는 세상에 보폭을 맞추는 것이겠지만, 긍정적인 변화에 어찌 손뼉을 치지 않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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