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삼조 시인.

세월만큼 부지런한 것이 있을까. 잠시도 쉬지 않으면서 현재를 과거로 만들고 우리를 미래로 데려간다. 그 부지런함에 홀려 넋을 잃고 있으면 어느새 주어진 시간을 다 쓰고 말 일에 부닥치는 게 인간의 숙명이기도 하다. 그 숙명을 생각하면 인생이 한없이 허무해지기도 하지만 그 숙명이란 게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닥쳐오는 것이라 거부할 방법도 명분도 없다. 그러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허락된 시간 속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기도 하고 기쁨도 맛보고 때로는 좌절하기도 한다. 

또다시 새해를 맞는다. 무언가를 기약해 보기 좋은 때다. 그리고 세상에는 해볼 만한 일들이 많다. 내가 할 만한 보람 있는 일을 고르고 그 일을 차근차근 실천해 봄으로써 내 삶에 가치를 부여한다면 얼마나 좋으랴. 설혹 작심삼일(作心三日)로 사흘 만에 그만두더라도 좀 쉬었다 또 하면 될 것이고, 마음에 두었다가 내년을 기약해도 좋을 것이다. 마음을 낸다는 일은 그것만 해도 좋다. 씨앗을 심는 일이기 때문이다. 자라게 하고 가꾸는 일은 두고두고 실행하면 된다. 옛말에 ‘일년지계(一年之計)는 재어춘(在於春) - 일 년의 계획은 봄에 있다’라고 했다. 새해를 맞아 봄에 씨 뿌리듯 무언가를 계획하는 일은 그것만으로도 아름다운 일이 아닐 것인가. 

씨를 뿌리는 일로 가장 큰 감동을 주는 소설로는 아마 프랑스 사람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단편소설이라 긴 시간을 요하지도 않을 것이므로 혹시 아직 접하지 못한 분에게는 일독을 권한다. 소설은 부피에라는 노인의 이야기다. 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의 한 고원지대는 원래 숲이 우거진 비옥한 땅이었으나 사람들의 탐욕과 전쟁 등으로 인해 숲이 사라져 사막처럼 변했다고 한다. 가족을 잃은 부피에 노인은 양을 쳐 생활하면서 이 땅에 하루 백 개씩 도토리 열매를 심고 다른 나무도 심기 시작했다. 그렇게 40년이 지나자 그 땅은 숲이 우거지고 물이 넘치며 동물들과 사람들이 돌아와 살아가는 아름다운 곳으로 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그 숲을 가꾼 부피에 노인의 존재는 알지 못한다는 이야기다. 

영웅이 꼭 거룩한 임금이나 공이 큰 장군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분들도 당연히 영웅이겠지만 나를 이만큼이나 길러낸 내 부모님이 우리에게는 가장 큰 영웅이 아닐까. 말없이 일터에서 성실히 일함으로써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데 충분한 한몫을 한 사람도 당연히 영웅일 것이다. 때로는 부피에 영감처럼 내 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살아가기에 좋은 환경을 만드는 일에 평생을 헌신한 분은 더 큰 영웅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꼭 영웅이 되기 위해서 ‘씨’를 뿌리자는 것은 물론 아니다. 2020년은 우리 일생에서 한 번밖에 경험할 수 없는 시간이다. 어쩌면 우리 일생에서 가장 소중한 일이 이때에 이루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이 시간을 그냥 맞을 수야 없지 않은가. 새해는 무언가를 기약하기 좋은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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