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천문:하늘에 묻는다>

▲ '천문' 포스터.

멜로 장인 허진호의 귀환이다. 뜻밖에도 사극이다. 그런데 열고 보니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로 불멸의 명대사를 남겼던 그답게 <천문: 하늘에 묻는다> 또한 절절한 사랑으로 가득 채웠다. 서로를 인정하고 깊이 헤아리는 것도 사랑의 한 모습이라면 <8월의 크리스마스>처럼, <봄날은 간다>처럼 <천문: 하늘에 묻는다> 역시 사랑을 말하는 영화다. 

조선조 초기 과학발전을 이끌었던 천재 과학자 장영실은 세종대왕의 가마가 부서지는 ‘안여(安輿) 사건’으로 장형(杖刑)을 받은 뒤 파직되었고, 이후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동래현 관노(官奴) 출신으로 종3품 대호군에 오른, 사서에 그렇게나 자주 등장했던 인물이 갑자기 기록에서 사라진 이유는 뭘까. 이런 의문에서 출발한 이야기 <천문: 하늘에 묻는다>는 조선의 하늘과 시간을 만들고자 했던 세종대왕과 한순간 역사에서 사라진 장영실의 숨겨진 이야기를 다뤘다. 한 줄 역사의 기록에서 출발한 영화는 실존 인물을 다루면서 역사가 만든 빈틈을 풍성한 상상으로 꽉 채웠다. 그런데 이 사극을 표방한 상상이 가슴을 저미게 하는 브로맨스일 줄이야. 

흔히 격이 다르다는 표현을 쓴다. 손짓 하나 눈빛 하나에도 품격이 느껴지는 이들을 우리는 ‘대배우’라고 부른다. 이런 대배우의 반열에 오른 두 연기자 최민식과 한석규가 20년 만에 한 작품에서 만난다고 하니 당연히 기대지수는 높을 수밖에 없고 결과도 대단히 만족스럽다. 세종과 장영실이라는 익숙함을 전면에 내세우지만 두 배우가 체현하는 두 인물은 익숙한 듯 새롭다. 드러나지 않은 관계, 이야기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고받는 두 배우의 섬세한 감정선은 관객들의 심장을 건드리며 감동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멜로에 특화된 감독의 연출력이 더해졌으니, 연기 장인들이 만드는 장면 하나하나가 그저 황홀하기만 하다. 다만 조선조 과학발전사를 이끌었던 두 사람의 이야기인 만큼 얼마나 대단한 성과를 이뤄냈는지를 조금만 더 주목했으면 좋았겠으나 세종대왕과 장영실의 관계도에 치중한 것이 다소 아쉬울 뿐이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 현재 한국 영화계를 이끌어가는 최민식, 한석규, 송강호라는 세 명의 배우와 헐리웃에서 자리 잡은 김윤진까지 출연한 영화 <쉬리>가 만일 지금 제작된다면 대체 어떻게 될까. 아무렇지도 않게 ‘역대급’이라는 말을 쓰는데, 역대급 캐스팅이라는 건 이런 거였다.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