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삼조 시인.

광고가 나오면 채널을 돌려버리는 습관이 있는 시청자들을 붙잡아 두기 위해선지 요즘 TV 광고는 상당히 진화한 것 같다. 광고가 본 방송보다 훨씬 재미있다는 경우도 종종 있다. 광고 만드는 사람들의 노고가 대단했겠다. 그 짧은 시간에 시청자의 흥미를 끌만한 스토리를 훌륭히 전개해 낸다. 

최근 인상 깊게 보았던 한 광고를 보자. 요즘 대세라는 여배우 이정은이 거실에 앉아 있는 장면이 나오고 그 모습을 액자 속 남자 배우 셋이 노래로 부른다. 곡은 자주 들어 익숙함 직한 오페라곡 중 ‘투우사의 노래’이다. 매일 열두 시간이나 밤낮없이 영화만 본다는 거다. 거기에 대한 변명으로 이정은이 이어 노래한다. ‘스케줄 없어 그런 건 아니야, 정말로 아니야’라고. 이렇게 노래는 이어지고 춤판이 이어진다. 자주 보는 배우들과 귀에 익은 곡을 곁들여 시청자들을 재미있게 유혹한다. TV 영화가 너무 재미있다는 거다. 하지만 결국은 우리 회사에 통신비를 내고 그 전파의 TV를 봐 달라는 광고다. 

광고조차 재미있으니 시간 있는 사람들이 TV 앞에 앉는 건 아무래도 요즘의 ‘대세’인 것 같다. 게다가 수백에 달하는 채널 중에서 입맛에 맞는 프로그램만 볼 수 있으니 시간만 허락한다면 정말 열두 시간도 짧다 할 기세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나 의견만 받아들이다 보니 생각이 굳어지게 된다. 다양하고 깊이 있는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하니 독자적인 생각을 해 내지 못한다. TV 수준 이상의 생각도 어렵다. 수많은 ‘옹고집’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스마트폰으로 주로 시청한다는 유튜브도 거의 마찬가지 사정일 것이다. 각종 정보와 생각을 주고받는 수많은 SNS도 그럴 것인데, 게다가 스마트폰이라는 매체의 사정상 대체로 단편적이고 어쩌면 즉흥적인 사고(思考)가 대부분일 것으로 짐작된다. 수많은 사람들의 짧은 생각을 다 읽자면 그것도 시간이 걸려 이 SNS를 끊었다는 사람도 종종 보인다. 

그런 사정이니 만약 시간을 만들 의사가 있고, 세상의 모든 일에 대해 보다 깊은 생각을 만나고 싶다면, 또 그런 생각을 해 보고 싶다면 답은 아무래도 독서에 있을 것 같다. 몇 년 전만 해도 종이책이 곧 사라지지 않겠냐는 예언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모든 정보가 인터넷 속에 있으니 책도 인터넷 속으로 사라지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과문(寡聞)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인터넷 속 책을 사 보는 사람이 많이 생겼다는 말은 아직 들리지 않는다. 책은 역시 종이로 된 실물(實物)로 옆에 두고 시간 날 때마다 뒤적여보는 맛이 있어야 제격이 아닐까. 설혹 읽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읽으리라 눈독 들이는 재미는 뜻있는 사람들의 오래된 호사(豪奢)였다.

마침 밤이 긴 때다. 옛날 한유라는 사람이 아들에게 책 읽으라고 준 시(詩)의 한 구절에서 ‘등화가친(燈火可親)’이라는 말이 나왔다고 했다. 등불을 가까이할 때가 되었다는 말이다. 깊은 밤에는 생각도 깊어지는 법이다. 온갖 욕심이 난무하는 어지러운 때, 책을 가까이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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