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긁적. 20×15. 2019.

아침 일찍 문 여는 커피가게를 알고 있다. 이것은 나에게 축복이라고 여겼다. 모닝커피가 아침 메뉴가 되어 버렸고 마시던 커피는 차 안에서 하루 종일 식어, 늦은 밤 마지막 남은 한 모금을 식도로 넘기고 나서야 나는 집 계단을 터벅터벅 오른다. 오늘도 여전히 빵 굽는 냄새가 커피 향과 섞여 시큰둥하던 아침 공기에 다시 한번 기지개를 펴준다. 방금 들어갔던 커피가게 냄새가 이젠 차 안으로 옮겨져 버렸다. 한 손에 핸들을 잡고 한 손에는 커피를 들어 분주한 아침거리를 가누며 작업실 앞으로 도착했다.

참 이상한 습관이 생겼다. 주차를 하고서도 나는 곧장 차 밖으로 나오질 못하고 있다. 언제부터 생긴 습관인지 모른다. 작업실 앞에 차를 세우고 차 안에 우두커니 앉아만 있었다. 모자란 잠 탓에 한숨을 자다 내리기도 하고, 때로는 아무 이유 없이 몇 시간이고 앉아 있다.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앉아 있는 모습이 마치 수행하는 사람이라고도 여겨졌다. 커피의 온기가 남아 있고 여전히 나는 그곳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생각 의자가 있다더니 나는 차 안에서 온갖 생각들을 정리하는 이상한 버릇이 생겨 버렸다.  

작업실에 들어서면 나는 무언가를 쉴 틈 없이 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래서인지 세상에서 가장 편한 공간을 만들어 놓고도 나는 그곳으로 들어가기를 주저하고 있다. 바다가 보이는 많은 창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동굴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며 중얼거렸다. 커튼을 내려 나만의 동굴로 만들어 버린 탓이기도 했다. 들어서는 순간 나는 뭔가에 홀린 사람마냥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고 있다. 어제 몇 자 쓰다가 그대로 남긴 벼루 먹물에, 또다시 흥건하게 물을 부어 먹을 갈고 오늘 가지고 놀 붓을 천천히 적신다. 작업하다 둔해져 돌을 날려버렸던 전각 칼 생각에 사포를 꺼내 가지런히 올려놓고는 푸석해져 버린 내 작은 손등을 가여워했다. 컴퓨터를 켜서 마저 쓰지 못한 글을 써야 하고 얼마 뒤 있을 강연의 내용을 만들어야 하니 머릿속은 온통 그날의 잡념들로 가득하다. 나는 출강하고 있는 학교 그들의 A와 B를 고민해야 한다. 온갖 재료와 서류가 한꺼번에 늘어져 있는 책상을 쳐다보며 또다시 한참을 보낸다.  

차(茶)를 내린다. 핸드폰을 열어본다. 주섬주섬 주변 정리를 해본다. 창밖을 바라본다. 비뚤비뚤 꽂혀있는 책을 다시 줄을 세운다. 화분에 물을 준다. 앞날 마셨던 빈 컵들을 씻는다. 온풍기 때문인지 건조하게 당기는 얼굴에 크림을 잔뜩 바른다. 책상 앞 붙여진 메모지들을 하나하나 노려본다. 때로는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만년필에 잉크가 굳었을까 선을 그어본다. 긁적긁적... 참... 작업 시동 한번 걸기 쉽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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