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산오광대를 지켜온 사람들…“오광대 하면 ‘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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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산오광대를 지켜온 사람들…“오광대 하면 ‘가산’”
  • 고해린 기자
  • 승인 2019.12.17 14: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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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우성 보유자, 김나율 사무국장
▲ 오방신장무의 남방적제장군 가면을 든 김나율 가산오광대보존회 사무국장과 양반탈을 든 한우성 가산오광대 보유자.

[뉴스사천=고해린 기자] 12월 6일 문화재청이 ‘한국의 탈춤’을 202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신청 대상으로 선정했다. 한국의 탈춤에는 현재 국가무형문화재 13개 종목, 시도무형문화재 4개 종목이 지정돼 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그래서 탈춤이 뭐?’하는 지역민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탈춤에 사천지역 탈춤인 가산오광대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면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우리 지역의 귀중한 국가무형문화재이지만, 이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가산오광대는 1980년 11월 17일 국가무형문화재 제73호로 등재됐다. 오방신장무, 영노, 문둥이, 양반, 중, 영감·할미의 6과장으로 구성됐으며, 약 35개의 가면을 사용한다. 파계승에 대한 조롱, 양반‧관료층에 대한 비판, 처첩(妻妾)관계 및 봉건적 가족제도에 대한 불만을 주제로 다루고 있다. 오방신장무가 있고, 영노탈이 사자모양인 점, 영감‧할미 과장에서 이례적으로 영감이 죽는다는 부분이 여타 지역과 구분되는 특징이다. 

본지는 13일 오후 선진리성에 위치한 사천무형문화재전수교육관에서 한우성 가산오광대 보유자(84)와 김나율 가산오광대보존회 사무국장(54)을 만났다. 그리고 수십 년 동안 그들이 지켜온 우리의 전통문화예술 ‘가산오광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계홍, 한윤영, 한종기, 한우은, 한우성... 우리 집안 아저씨, 조카, 내 밑에 동생이고 마지막이 나 한우성이.”

▲ 양반탈을 들고 웃고 있는 한우성 가산오광대 보유자. 양반탈과 그의 얼굴이 닮은 듯 보였다.

한우성 선생이 사무실 벽에 걸린 중요무형문화재보유자인정서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처음 무형문화재보유자로 인정받은 한계홍, 한윤영 선생의 인정서 밑에 적힌 ‘문화공보부 장관’이라는 명칭에서도 세월의 흐름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손주까지 치면 5대째 가산오광대에 몸 담고 있는 셈이라며 한 선생이 말했다.

“가산오광대는 조창오광대라고도 하는데, 옛날에 축동 가산마을이 인근 7개 군에서 세곡을 받아서 중앙에 바치는 조창(漕倉)이 있던 곳이야. 그때 조창이 있고 사람이 많이 모이니까 오광대가 생겼지. 그래서 1950년 말 쯤 중단이 된 걸 71년에 동아대학교 강용권 교수가 복원했어. 그때부터 인자 내가 옆에서 심부름도 하면서 시작한 게 50년 가까이 됐지.”

‘피는 못 속인다’는 한 선생은 가산오광대의 주축이 한 씨 집안이라고 설명했다. 김나율 사무국장도 그 당시 가산마을이 한 씨 집성촌이었다며 덧붙였다. 300여 년 전부터 전해 내려오던 문화를 자손들이 배우고,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는 것. 

그렇다면 가산오광대 활동을 하는 이들은 누구일까? 올해로 16년째 가산오광대 활동을 해오고 있는 김나율 사무국장이 설명을 이었다. 

“25명에서 30명은 항상 꾸준히 활동을 하시고 있죠. 인간문화재 한우성 선생님이 계시고 그 밑에 전수교육조교, 이수자, 전수자 순으로 피라미드처럼 내려와요. 토요일마다 전수교육을 받는데 한 선생님하고, 전수교육조교 선생님들은 연세가 있으시니까 지도만 해주시고, 무대에서 주축으로 뛰는 사람들은 이수자, 전수자들이에요.”

가산오광대 이야기를 풀어내는 한우성 선생에게서는 한 분야의 장인이 가진 자부심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특히 사장될 뻔했던 ‘상사디야’ 춤을 재연해 전하고 있는 것도 그의 자부심 중 하나다. 

“상사디야라고, 가산오광대 뒷풀이 춤이 있는데 선친들이 하던 놀이야. 지금은 돌아가셨는데 어릴 적에 직접 상사디야 놀이를 하셨던 분의 구술을 듣고 춤을 재연했지. 지금도 축동초등학교 학생들이 공개행사 때 이 춤을 재연해.”
 
사회풍자적인 성격을 지닌 가산오광대 전문가 아니랄까봐, 두 사람은 가산오광대를 하면서 느꼈던 어려움에 대해서도 진솔하게 털어놨다. 김 국장은 전문가의 부재와, 인력 부족을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았다.

“제일 큰 어려움은 전문가가 부족하다는 거예요. 어떤 한 가지를 던져주면 제대로 표현해 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야 관객들에게도 더 다가갈 수 있고 호응도 커요. 아무래도 아마추어가 해내기에는 힘든 부분이죠. 프로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고요. 인력도 부족해서 가산오광대 공연 기획부터 사무실 청소까지 저 혼자 모든 업무를 소화하고 있어요.”

두 사람에게 한국의 탈춤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신청 대상이 된 것에 대한 소감을 물었다. 

“유네스코에 한국 탈춤이 등재되면 전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저희 스스로 자부심도 생기겠죠. 그래도 현실적으로 크게 달라지는 부분은 많지 않을 거예요.”

한 선생도 지자체 및 지역사회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각 지자체에서 도와줘야 돼요. 위에서. 가산오광대 뿐만 아니라 많은 전통예술문화단체가 있는데, 시에서 골고루 도와줘야 됩니다. 안동은 안동시하고 경상북도에서 그 단체를 도와주니까 1년 내내 단체에서 상설 공연을 해요. 그렇게 되면 지역 문화예술도 다 살아나는 거 아니겠습니꺼.”

▲ 2017년 4월 가산오광대 공연 중 2과장인 영노과장 모습.

요즘 가산오광대보존회는 옛 것과 새 것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고자 줄다리기 중이다. 전통을 잘 살려서 옛 것을 지켜 나가는 게 맞는 것인지, 요즘 사람들이 호응할 수 있도록 새롭게 변형을 해야 하는 지 고민이라고.  

“가산오광대는 노래나 춤이 많다기보다 등장인물들이 주고받는 대화 위주에요. 근데 그 대사가 옛말이라 요즘 관객들은 그 말을 이해를 못해요. ‘저게 무슨 말인데?’라는 시선으로 보는 거죠.”

전통문화를 이어간다는 게 쉽지만은 않을 터, 그럼에도 두 사람은 긍정을 잃지 않았다.

“저희도 자체적인 역량을 키우고,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도록 이름에 걸 맞는 실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죠.”

앞으로 두 사람의 목표는 뭘까? 한 선생이 하회탈 같은 웃음으로 답했다.

“내 꿈은 앞으로 많은 아이들과 꿈나무들에게 가산오광대를 전수하는 거지요.” 

김 국장의 목표도 ‘오광대’하면 ‘가산오광대’라고 사람들이 바로 떠올릴 수 있게끔 가산오광대가 많은 사랑을 받는 것이란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것들이 쏟아지고 범람하는 지금, 오롯이 가산오광대를 위해 걸어온 한우성 선생의 마지막 말이 인상 깊다. 

“우리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는 양수 안에서 춤추고, 태어날 때는 울면서 노래를 불렀어. 그러니까 당연히 무용과 춤을 즐기게 된 게 아니겠습니꺼.(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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