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사천] <어떤 양형 이유>

▲ 「어떤 양형 이유」박주영 지음 / 김영사 / 2019

현 울산지방법원 형사합의부 부장판사인 저자는 이 책을 내면서 판결로만 말하는 판사가 판결 밖 수다로 구설에 오르는 것은 아닌지 고민을 했다고 한다. ‘판결문’은 법적으로 의미 있는 사실만을 추출해 일정한 법률효과를 부여할 뿐 모든 감상은 배제하는 글이다. 반면 ‘양형 이유’는 판사가 피고인이나 사회에 메시지를 전하고 싶을 때 쓴 것으로 법적 평가로 소실돼버린 인간과 그 고통 일부를 복원해내고자 하는 바람을 담고 있다.

1장 ‘나는 개가 아니다’에서는 가정폭력, 교수의 제자 성폭행, 성소수자 및 다문화 부부강간, 산업재해 등 인권유린 사건의 구체적 재판 사례를 들며 공식 판결문 뒤의 ‘양형 이유’와 그에 관한 소회를 밝힌다. 다수가 소수자를 보호하는 것이 결국 나 자신은 물론 우리 모두를 더 효율적으로 오래 견고하게 보호할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한다.

2장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에서는 부산가정법원 소년부에서 수많은 소년재판을 맞닥뜨리며 일일이 남겨둔 메모들을 소개한다. 소년사범을 ‘사범’으로 먼저 대했던 초기 자신의 성급한 마음가짐을 반성하고, 실은 그들이 우리의 관심과 사랑이 부족한 ‘아이들’임을 강조한다. ‘세상에 나쁜 아이는 없다. 서로 다른 처지의 좋은 아이만 있을 뿐이다.’

3장 ‘부탁받은 정의’에서는 국민으로부터 정의를 구현하란 소명을 받은 판사로서의 전문가적 견해, 인간적 고뇌와 철학을 이야기한다. 개별 피고인에게 맞춤치료를 제공하여 재범률을 획기적으로 떨어뜨린 미국 약물법원의 현재를 부러워하며 우리 사법체계도 하루빨리 ‘치료사법’ 이념을 도입하기를 촉구한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 정의의 본질이므로.

오늘도 정의를 고민하는 판사는 말한다. ‘국민은 불복할 수 없는 상급심’이라고. 판사가 매일 차가운 법대에 서는 이유가 바로 ‘우리를 대신하여’이기 때문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에 이 책은 나와 주변을 한 번쯤 돌아보게 하는 시간을 가져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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