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사천만 해저 리포트 ②

▲ 11월의 사천 바다 속은 봄이 오고 있었다. 톳, 모자반, 감태, 잘피, 청각 등 다양한 해조류가 살아가기에 수온이 더 알맞은 듯했다. 이들은 바다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었다. 사진은 톳이다.

청정바다의 상징 한려해상국립공원. 그 한가운데 있는 것이 삼천포와 사천만이다. 그 청정의 이미지는 오늘날 심각하게 위협 받고 있다. 육지와 섬에 둘러싸여 온갖 문명의 찌꺼기를 받아냄은 물론, 여름철이면 팔자에 없는 ‘남강물폭탄’을 뒤집어쓰곤 하는 탓이다. 그럼에도 사천 바다는 어질고 모질어서, 뭇 생명을 품고 기르는 일을 쉬지 않는다. 그 생명을 끝내 인간에게 다시 내어주기까지 한다. 사천 바다의 이 베풂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영원할까? 아니면 한계에 이른 걸까? ‘사천만 해저 리포트’에서 그 궁금증을 풀어본다. / 편집자     

[뉴스사천=하병주 기자] 11월의 사천은 전형적인 가을 날씨다. 낮과 밤 기온차도 크고 단풍도 절정을 향해 간다. 곧 겨울의 문턱을 맞는다. 하지만 바닷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바다 속은 이제야 봄이 온다”고. 여름철 바닷물 온도가 높을 땐 오히려 해조류가 녹아내리거나 성장이 억제됐다가 지금쯤 새싹이 돋기 시작한다는 얘기다. 물론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겠으나 바다 속 환경은 육지와 다르고, 온도에도 민감하다.

바다 속을 살피는 일도 마찬가지다. 여름철엔 수온이 높아 플랑크톤의 서식이 왕성한 편이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바닷물 투명도는 떨어진다. 물이 맑지 않으니 물속에 들어가더라도 사리분간이 힘들고 생태 관찰이 쉽지 않다. ‘사천만 해저 리포트’ 계획을 일찌감치 세우고도 11월에 이르러서야 수중탐사를 시작한 이유다.

그럼에도 탐사에 참여한 황문성 다이버는 예년만큼 물이 맑지 않다고 했다. 그만큼 촬영에 한계도 있었다. 탐사기간인 10월 30일부터 11월 9일까지 지상의 낮기온은 20℃ 안팎이었고, 바닷물 온도는 위치에 따라 조금씩 달랐다. 삼천포발전소 배수구 주위는 22℃, 남일대해수욕장과 비토섬 주위, 사천만 내만은 20℃, 신수도 근처는 18℃였다. 바닷물 온도는 공기처럼 변화가 크지 않은 만큼 장소와 물의 흐름에 따른 차이로 해석함이 타당해 보인다.

▲ 모자반. 모자반 군락 주변에 가면 맑고 상쾌한 향기가 났다.

바다의 에너지원, 잘피와 모자반
11월의 사천의 바다 속은 말 그대로 봄을 맞고 있었다. 수심이 그리 깊지 않은 바닷가로는 잘피와 모자반, 톳 등이 무성했다. 감태와 청각도 새 싹을 틔우고 있었다.

▲ 감태. 감태는 보통 수온이 높으면 녹아내리고 수온이 내려가면 다시 활력을 찾는다.

이들 해조류는 땅 위의 식물처럼 광합성을 한다.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와 영양물질을 만들어내, 바다 동물들이 살아가는 데 필수 에너지원을 제공한다. 해조류의 이산화탄소 흡수 능력은 육상식물보다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조류는 또 바다 동물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한다. 영양물질이 플랑크톤을 불러들이고, 어린  물고기와 큰 물고기들이 먹이사슬을 이루며 이곳에서 살아간다. 해조류는 초식성 어류와 전복, 고둥, 군소, 해삼 등에겐 직접적인 먹잇감이다.

▲ 해삼이 자신의 배설물과 함께 있다.

여러 해조류 중 잘피는 실안과 대포항 사이에서 특히 많이 볼 수 있었다. 수심이 낮고 모랫벌이 잘 형성돼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잘피는 이밖에 사천의 여느 해안에서 군락의 크기만 다를 뿐 곧잘 발견됐다.

신수도를 비롯한 섬 가까이에는 모자반이 숲처럼 군락을 이룬 곳이 많았다. 너무 깊숙이 배를 몰았다간 배 스크루에 감겨 낭패를 보기 십상이었다. 그곳에선 독특한 향기도 풍겼다. 비릿하거나 불쾌하다기보다 맑고 깨끗해 기분을 좋게 하는 향이었다.

사천 바다의 동쪽 삼천포발전소에서 서쪽 별학도에 이르기까지 감태, 청각, 톳, 우뭇가사리를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대체로 새롭게 싹을 틔우는 모습”이라고 황문성 다이버는 분위기를 전했다.

▲ 바다나리가 화려한 색상을 뽐내는 듯하다.

물 맑아 더 다양한 관찰 ‘신수도’
모래층과 암반으로 어우러진 신수도 동쪽(일부 통영 수우도 해역)에선 특히 건강한 생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어쩌면 상대적으로 물이 더 맑아 다양한 생명체가 드러났는지도 모를 일이다. 해삼, 참소라, 멍게, 성게, 말미잘처럼 널리 알려진 것에 더해 바다나리와 갯민숭달팽이도 볼 수 있었다.

▲ 참소라 두 마리가 짝짓기 하는 모습

사천 바다에서 관찰된 어종으로는 어린 볼락이 가장 흔하게 관찰됐고, 다금바리, 돌돔도 드물게 볼 수 있었다. 성게를 돌에 찧어 먹이로 풀었더니 용치놀래기가 가장 먼저 달려왔다. 사납고 먹이욕심이 많기로 유명한 용치놀래기는 떼로 몰려와 순식간에 성게 한 마리를 먹어치웠다.

▲ 사천에선 술미라고 부르기도 하는 용치놀래기가 성게 살을 뜯기 모여들고 있다.

이번 탐사에서 바다의 사막화로 불리는 백화현상(갯녹음)은 관찰되지 않았다. 또 발전소 하역장 부두 근처에서 몇 해 전까지 발견되던 빨간부채꼴산호도 볼 수 없었다. 백화현상과 빨간부채꼴산호는 한때 남해안 바다의 ‘아열대화’를 보여주는 상징처럼 여겨지곤 했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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