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사천] <사기병>

▲ 「사기병」윤지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9

“나, 암이래.”

 젓가락으로 족발을 야무지게 집어 들며 J는 무심히 말했다. 인간이 기대수명까지 생존할 경우 1번 이상 암으로 진단받을 확률이 최고 40%에 달한다는 통계가 있는 만큼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주변에 적잖이 발생하는 병이었지만 적어도 너와 나의 일은 아닐 거라 감히 생각했다. 

 멋진 로봇 뿅가맨으로 다섯 살 마음을 뿅 가게 만들고(마음을 지켜라! 뿅가맨), 유치원에 가기 싫은 땅콩이 마음을 헤아리고(우주로 간 김땅콩), 궁금했던 우리 가족의 시작(엄마 아빠 결혼 이야기)을 조근조근 알려주는 등 그림책으로 색색의 이야기를 전하던 작가 윤지회에게도 암은 그렇게 느닷없이 찾아왔다.

 어제까지도 두 돌도 안 된 아들과 종일 씨름하고 저녁 반찬을 걱정한 그녀는 오늘 위암 4기 환자가 된다. 위암 4기 환자의 5년 이상 생존율은 7%, 뒤집어 말해 5년 안에 살아있지 않을 확률 93%. 그녀는 슬퍼하거나 정신을 추스를 새도 없이 위를 거의 다 떼어 내는 대수술을 받고 사람을 녹아내리게 만드는 항암 치료에 들어간다.

 이 책은 손톱을 물어뜯는 습관마저 잊을 정도로 끔찍한 고통을 매일 마주하고 있지만 눈이 떠지는 오늘에 기뻐하며 생존율 7%를 향한 씩씩한 도전을 그림일기로 기록한 작가의 투병기이다. 육신을 너덜하게 하는 항암치료에 맥없이 무너질 때마다 약이 독하니 아기는 나중에 가지라는 말로 내일을 꿈꾸게 하는 의사, 푸시킨의 시로 사랑을 전하는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 아빠, 상황에 휩쓸리지 않는 의연함으로 중심을 잡아주는 남편, “엄마 엄마”를 불러대는 자그마한 아이는 그녀를 다시 일으킨다.  

 못된 암과 거칠게 싸운 끝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의 해피엔딩을 기대했지만 작가는 최근 8차에 걸친 항암을 끝내고 한숨 돌리려는 찰나 난소로 암이 전이되어 다시 지난한 싸움에 돌입하였다 한다. 병이야 그러든 말든 내일을 맞이하겠다고, 꼭 할머니가 되고야 말겠다는 그녀를 응원하기 위해 처음으로 SNS 가입을 했다. 4기의 병이 말끔히 나아 사기(詐欺)였던 일이 되기를, 그리고 J의 그것 역시 인생의 사기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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