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곳. 20×15. 2019.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가 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를 마음속에 두고 사는 사람이 있었다. 어릴 적 기억 속에 어렴풋이 배경이 되어졌던 것들이 어른이 되면서 현실이 되기도 하고 다시 돌아와 보니 궁금해지기도 한다. 막연한 그리움이 되었던 그곳. 그때 그곳을 함께 바라보았던 사람들이 떠나가고 없을 때는 더욱 그러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했던 그 배경을, 돌아와 기억을 상기시켜보니 막연히 애틋한 그곳이 그 사람이었던 경우가 있었다. 

어릴 적 아버지가 집 마당에서 어린 아들과 함께 바라보았던 먼 산이 있었다. 밭을 매는 어머니의 등 뒤에도 먼 산이 있었고,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 너머로도 먼 산이 보였다. 퇫마루에 앉아 햇빛 길게 드리운 가을볕에서도 먼 산이 보였다. 노을빛이 물드는 아찔함 속에도 먼 산이 있었다. 

바다 건너 병풍처럼 둘러진 어느 산꼭대기에 공군기지가 있었다는 그곳은 별처럼 반짝이는 불빛이 있었다. 지금은 세상이 좋아져 길이 닦이고 다리가 놓이고 자동차가 달리지만 그때 어린 아들의 눈동자 속에 그곳은 바다 건너 먼 이상향과 같은 세상이었다. 불빛이 보이는 산꼭대기는 그냥 산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멀리서 반짝이는 그곳을 가리키며 옛날이야기보다 더 먼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었는지도 모른다. 호랑이가 살고 산짐승이 사는 그런 산이 아니라 누군가가 있을 것만 같은 그런 산을 바라보며 평생을 살았는 지도 모른다. 그저 막연한 별나라였을지도 모른다.  

그곳을 가 보았다. 평생 동안 닿지 못한 그곳을 삼십분이 채 못 되어 달려와 버렸다. 오르는 산길에는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들꽃이 보이고 어머니가 평생 매던 풀포기도 보인다. 오르는 내내 신음 같은 탄성은 아찔한 기억과 섞인 아쉬움이었다. 왜 진작 이곳을 한번 와 보지 못했을까... 첫사랑과 이상향은 만나지 말아야 하거나 가보지 말아야 하는 것이라 여겼던 생각이 허물어져 버리는 순간이었다. 만나야 하는 거야. 가 보아야 하는 거야. 그렇게 진하게 그리웁다면......

불빛이었던 먼 산 철탑 앞에 한 소년이 서 있었다. 마을을 뚫어져라 내려다보는 소년이 서 있었다. 아버지 평생의 눈동자처럼 박혀있는 먼 산에 선, 반백을 훨씬 넘겨 버린 그 소년은 한참 동안 말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마을 어귀 어딘가에서 담배연기 한 모금 내뱉으며 한숨을 깊게 몰아쉬는 아버지가 보인다. 습관처럼 멍하니 바라보는 먼 산에서 자기처럼 늙어 버린 어린 아들과 눈이 마주쳐 버렸다. 

...... 그리운 생각에 재를 오르니 구름에 가리어 아니 보이네. 끊었다 이어 오는 가는 노래는 바람을 타고서 고이 들리네.

저작권자 © 뉴스사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