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自勝者强(자승자강) 자신을 이겨야 진정으로 강한 자다. 20×15. 2019.

팟! 순간 리허설을 준비하던 무대는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300인치 LED 스크린이 아웃 되어버린 순간이었다. 무대 뒤에서 공연 순서를 챙기며 최단 동선에 놓을 글씨 도구들을 계산하고 있었다. 힐끗 쳐다보니 무대 위 큰 프로젝터 스크린이 내려지기에 또 다른 효과겠지 여겼고, 잠시 후에야 나에게까지 그 상황이 전해졌다. 이미 리허설 시간이 점점 사라져 버리고 있었다. 움직이는 스텝들의 발이 빨라지고 낯빛이 어두워지더니 잠시 후, LED 스크린을 포기하고 프로젝터 스크린을 향해 영상을 조절하기 시작했다. 

내심 기뻤다. 사실 형광등처럼 밝은 LED 화면 불빛이 애초부터 싫었다. 동양적인 서예는 은은한 천의 효과를 주는 프로젝터 스크린이 더 제격이라 여겼지만 행사가 많은 시월에 영상 기술자만을 데리고 올 수 없는 상황에 분위기를 포기하고 밝고 선명한 기술을 선택하게 되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내 머릿속에 그려 놓았던 효과로, 조명과 어울린 아주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라 하자. 

그런데 왜 영상이 전체 고정 영상 하나만 잡히는 것인가! 대공연장의 시설과 외부에서 가지고 들어온 카메라가 연동이 되질 않았다. 전체 영상, 무대 위 근접 영상 그리고 관객 쪽 영상 이렇게 세 개의 카메라가 움직이기로 되어 있었다. 나머지 카메라가 쓸모가 없어져 버렸다. 글씨 하나하나 붓끝을 보여 줄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다. 

 어쩌겠는가. 오히려 화면이 자주 바뀌며 산만해질 수 있는 일은 없을 것이고 전체 이미지 컷으로 보여 주면 된다고 안심을 시켰다. 글씨가 아니라 쓰는 모습에 집중 시켜 보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오히려 몽환적인 이미지로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게 해 보자 여겼다. 그래,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라 하자.

“선생님 죄송한데, 아직 진행 순서를 이해를 못 했습니다. 선생님이 좀 도와주셔야...” 이건 또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다 급체해 죽어 버릴 소리인가. 영상 리허설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리니 미리 준비 못 한 영상기술자는 체크를 할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덕분에 출연자, 진행자, 기획자, 현장 피디 역할까지. 난 두 시간 동안 넋이라도 있고 없고 여러 사람의 몫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몇 초까지 완벽하게 만들어 놓은 대본을 집어던져 버리고, 마이크를 잡으며 즉흥적으로 공연을 진행해 나가고 있었다. 

5개월을 준비한다고 밤을 새웠고, 공연 전날 하루는 긴장감에 밤을 새웠다. 그리고 본 공연 내내 나는 연극배우가 되어 있었다. 무대 위 관객 앞에서는 혼신을 다했고, 무대 뒤에서는 화만 냈던 연극배우가 되어 있었다. 위기에서 강해야 진정한 강자라는 말이 어디 남에게 하는 말이랴. 그래,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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