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사천] <도시를 걷는 문장들>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읽는다. 루마니아 클루지나포카에서는 윤고은의 《늙은 차와 히치하이커》를 읽고 영화 <미녀와 야수>를 본다. 이렇게 다녀온 여행은 《변신》을 볼 때면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의 아름다움을 불러오고, <미녀와 야수>의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도 클루지나포카 강으로 데려다준다. 바로 유럽의 작은 도시에 살며 소설을 쓰는 강병융의 여행법이다.
강병융의 유럽 여행기는 우리가 부산에서 서울을 가듯 친숙한 인상을 준다. 그가 슬로베니아 류블랴나에서 대학교수로 7년 차 현지인의 삶을 살고 있어서일 것이다. 친구를 만나러, 출장으로, 혹은 단순한 힐링을 위해 찾은 곳에서 그는 《발치카 No.9》 맥주를 홀짝이고, 기차를 타고, 오르막을 오른다. 그러면서 ‘이것만 보지 말고 저것도 보라’고 권한다. 오줌싸개 소년 옆의 오줌싸개 소녀를, 이탈리아 밑의 숨은 보석 몰타를 소개한다.
그가 여행지마다 챙기는 문학책 한 권은 늘 그의 첫 번째 동행자다. 동행자의 말과 감정이 여행에 영향을 미친다. 브뤼셀에서는 김연숙 시집의 두려움이, 베네치아에서는 소설가 앤디 위어의 초긍정 모험심이 그를 이끈다. 런던에서 권기만처럼 낙조에 볼을 비비며 마스다 미리가 말한 ‘일상 속의 새콤달콤한’ 뭉클을 느끼다 보면 문학이 여행으로, 다시 삶으로 들어온다. 책이라는 ‘일상’과 여행이라는 ‘비일상’을 적당히 섞는 방식은 일상이 힘들 때 견딜 수 있게 해준다. 비일상의 환상과 일상 간 경계를 허물어주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 지점에서 느끼는 자기만의 기쁨과 행복을 낭만적 언어로 풀어놓고 있다. 자기의 행복을 우리가 그대로 느껴주길 원해서가 아니다. 읽는 이들이 각자의 행복과 ‘뭉클’을 찾기를 바라는 것이다.
소설가가 곁에서 말동무해주는 여행의 맛은 어떨까? 그를 따라 유럽 도시의 구석구석을 누비며 내 여행 가방에는 일상 물건 한 가지로서 무엇을 담을지 골라보자. 그럼 이 책 이후 다음 여행에서는 ‘그곳’에서 만난 나만의 뭉클이 ‘이곳’으로까지 따라와 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