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24 목
연재/기획순원의 글씨에세이
[순원의 글씨에세이] 값어치
서예가 순원 윤영미  |  webmaster@news40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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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0.08  15: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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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값어치. 20×15. 2019.

지친 얼굴을 씻고 물기를 닦아내지 않은 채 가만히 거울을 들여다봅니다. 쳐다본 적이 까마득한 여자가 거울 안에 있습니다. 잠시, 뚫어져라 서로를 응시합니다. 밀폐된 욕실 안에 습한 공기가 여자의 혼란스러웠던 오감을 만져 줍니다. ‘따뜻하다!’

마흔여덟 여자의 눈가 주름 깊은 것이 웃고 울고 화내는 감정선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여겼습니다. 순간을 멈추지 않고 뛰고 있는 심장의 박동만큼이나 그 여자에게서 가장 쉴 새 없는 것이 눈가라고 여겼습니다. 문득 오늘 누군가가 순원이라는 호에 장난처럼 던진 말이 생각나 입꼬리가 올라갑니다. 그랬더니 눈꼬리가 내려옵니다. 눈을 맞추고 조심스럽게 거울에 입김을 불어 손가락으로 적어 봅니다. ‘너는 얼마냐?’

순원의 값은 순원이라고 합니다. 일 원, 이 원, 삼 원…, 십 원, 이십 원, 삼십 원, 사십 원, 오십 원 아니, 백 원, 이백 원, 삼백 원, 사백 원, 오백 원…, 만 원, 이만 원, 삼만 원, 사만 원…. 그러다가 일억, 이억, 삼억, 사억…, 이 모든 숫자 마지막 값이 순원이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숫자 마지막에 순원이 있다는 말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어 버립니다. ‘내가 하기 나름이 내 값어치이겠구나!’

그러고 보니 가격으로 매겨진 적이 몇 번 있습니다. 사내 같은 기질을 부리고 다녔더니 젖가슴이 없는 사내일거라며 그 특정 부위가 삼천 원에 흥정이 오갑니다. 조금만 더 써달라며 되받아 장난을 쳤고, 그 후로 내 닉네임에 매일 천 원씩 올려가며 바꾸었던 사천 원, 오천 원, 육천 원…, 만 팔천 원까지 바꾸다가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마 만 팔천 원에 낙찰이 되어 인터넷 카페 어딘가에서 그 이름이 장난스럽게 그대로 남아 있을지 모릅니다.

대학시절, 백 원짜리 자판기 커피 한잔 마시면서 뭐가 그리 즐겁냐고 친구가 와서 묻습니다. 주머니에 백 원짜리 동전 몇 개 있으면 세상 다 가진 사람처럼 행복하니 하는 말입니다. 그 뒤로 백 원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갖기도 하였습니다.

통장에 십만 원만 들어있어도 참 행복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마이너스가 되는 빠듯한 씀씀이에 남들 다 넣는 적금통장 하나 없이 부족하다가도 어쩌다 내 수중에 십만 원이 남아 있으면 그걸로 행복했던 때가 있습니다. 더 채워져 그 이상이 넘어가면 긴장감이 풀어지며 헛헛하다고 했더니 나는 딱 십만 원이라는 별명이 붙어 버렸습니다.

나의 과거 값을 계산해 보니 십만 삼천백 원이 나옵니다. 십만 삼천백 원으로도 잘 살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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