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선한의 영화이야기] <조커>

▲ '조커' 포스터.

배트맨 시리즈의 핵심 빌런인 Joker의 기원은 명확히 밝혀진 것이 없다. <조커 Joker, 2019> 역시 이 다양한 해석 중 하나다. DC의 히어로물이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는데 의외란 생각과 더불어 대체 조커의 탄생을 어떻게 그려냈을까 하는 궁금증이 커질 수밖에 없고, 드디어 우리는 오랜 시간 기억에 남을 캐릭터 기원과 이를 연기하는 연기자를 만났다.

영화는 기존 히어로물의 문법과 달리 결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이야기를 쌓는 방식을 택했다. 카메라는 세심하고 느리며, 음악이나 소도구 같은 세세한 장치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미장센은 치밀하다. 그 속에서 Joker,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는 굉장한 설득력을 가졌다. 히스 레저의 충격적 조커 이후 더 이상은 없을 줄 알았더니 이 영화의 헤드카피처럼 상상 그 이상의 전율처럼 다가온다.

불처럼 뜨겁고 얼음처럼 차가우며, 조커를 해석하고 근원을 탐구하는 영화적 태도는 집요하고도 한없이 우울하다. 그래서 깊은 우울에 빠지지 않으려 ‘이것은 영화다.’라는 걸 수시로 자각해야만 한다. 비상식적인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 힘들게 계단을 오르던 Arthur가 폭력과 광기에 몸을 내맡기고 가볍게 계단을 내려오는 Joker가 되기까지 한없이 느리게 달려가는데, 놀라운 흡인력과 몰입도 때문에 마치 미친 듯이 달려 나간 기분이다. 

다만 이 영화는 어쩔 수 없이 호불호가 갈릴 처지다. DC 코믹스를 대표하는 캐릭터가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서두르지 않는 영화적 속도가 기존 코믹스 팬들의 공감을 살 수 있을지 의문이며, “내 인생이 비극인 줄 알았는데, 코미디였어.”라고 조커의 탄생 비화를 보여주는 호아킨 피닉스의 열연은 캐릭터의 정체성을 흔든다. 코믹스의 빌런 Joker가 아니라 ‘호아킨 피닉스의 Joker’로 말이다. 그래서 배우와 심장을 두드리던 음악을 빼고 나면 남는 게 없다는 소리도 들린다.

폭력적 삶의 비극을 스스로 견뎌내던 한 남자가 광기 어린 조커가 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지켜봤는데, 게다가 배우의 연기는 세상 모든 환호와 찬사를 안기더라도 부족할 만큼 훌륭했는데, 최종 진화 형태는 굳이 조커가 아니었어도 됐다는 결론이 나온다. 조커를 봤음에도 조커가 보이지 않는 아이러니라니. 

명작임에는 분명하다. 다크한 DC 코믹스 세계관을 이토록 잘 해석하기도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의 별이 되어버린 히스 레저의 Joker가 더욱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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