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삼조 시인.

지난 25일 극단 ‘장자번덕’의 연극 「다솔사 가는 길」 공연을 보았다. 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이 원체 큰 공간이어서 그런지, 무료 공연임에도 빈 좌석이 더러 보여 마음이 쓰였다. 연극 공연을 위한 전문 소극장이 없는 지역 형편에도 마음이 닿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음을 보았고, 열악한 환경에서도 연극을 포기하지 않고 극단을 꿋꿋이 꾸려 나가는 사람들에 대한 경외심이 새로웠다.

연극은 원래 모방(模倣)과 제의(祭儀)에서 비롯되었다는 의견이 우세한 듯한데, 우리 민족에게도 자연스럽게 연극적인 것이 형성되어 왔다는 것이 정설인 것 같다. 중국 기록에 우리 민족이 음주(飮酒)와 가무(歌舞)를 즐긴다 했고, 이는 종교적 제사 의식에서의 특별한 연희나 그 후의 흥겨운 술자리가 비교적 자주 베풀어져 온 사실을 짐작하게 하는 일이겠다. 아마도 여러 지방의 탈춤이 그 연극적 제의를 이은 대표적인 것이고 꼭두각시놀음이나 판소리도 유사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겠다. 우리 고장에도 탈춤 가산오광대가 있고, 근래에 발굴되어 민속놀이로 재현된, 우리 고장 신수도에 전해진다는 적구놀이도 역시 흉(凶)한 일을 피하고자 하는 제의적 연극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 오래지 않은 옛날인 광복 후 무렵만 해도 우리 지역에서는 계몽적 성격의 연극이 성행했다는 이야기가 들렸고, 70년대 초에는 삼천포고등학교의 연극이 개천예술제에 참가해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는데, 그 지도의 주축이었던 교사들이 아마도 소시(少時) 때 그 연극의 주인공들이었을 것이다.

이런 우리 고장의 연극적 맥을 극단 장자번덕이 고집스럽게 잇고 있다. 이 극단이 없었다면 우리 고장 사람들은 아마 제대로 된 연극 한 편을 보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몇 달 전에는 경상남도 연극제가 우리 고장에서 열려 많은 연극을 볼 기회까지 있었다. 장자번덕은 2011년 제29회 전국연극제에서 「바리, 서천 꽃그늘 아래」로 대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한 바 있는 탄탄한 극단이다.

이미 이 극단이 고려 현종이나 매향비를 소재로 한 연극을 공연한 바 있듯이, 연극 「다솔사 가는 길」도 우리 고장의 역사 문화적 유산을 소재로 한 연극의 하나다. 이 연극은 1936년부터 다솔사에 거주하면서 다솔사의 주지였던 최범술 선생이 건립한 야학 ‘광명학원’(37년 개교 42년 폐교)의 교사였던 소설가 김동리의, 일제강점기 말 지식인들이 겪을 수밖에 없었던 고뇌를 그의 소설 「황토기」, 「등신불」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연관 지어 드러내는 새로운 이야기〔픽션, 허구〕이다. 이 연극에서는 소설가 김동리의 처한 환경을 이해는 하되, 그 사람을 무조건 숭배하고만 있지는 않다는 인상을 받았다. 사람이 완벽할 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이 연극은 한편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극단 장자번덕의 분투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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