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情(정). 15×20. 2019.

“나는 내 시계의 시간(한국 시각)을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당신에게 열심히 일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내 동생(동생? 준경이 아버지보다 더 나이가 많으니 큰아버지다!) 그리고 당신의 아들이 앙카라에 오면 머물 방을 나는 이미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터키에서 많은 에너지를 당신에게 보냅니다.”

나는 괵한을 수다쟁이라고 말한다. 터키로 떠난 지 이제 한 달이 거의 되어가지만 괵한은 여전히 매일 안부를 물어온다. 앙카라에 있는 괵한은 내 일정을 다 꿰고 있었다. 이곳보다 여섯 시간 늦으니 내가 자정을 넘겨 작업을 하고 있으면 어김없이 문자가 들어온다. 아마 괵한은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저녁시간을 즐기고 있을 때인가 보다. 아니 그보다도 이곳에서 50일간을 함께 지내다 보니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지 내 일정을 귀신같이 알고 있었다. 순간, 부처님 손바닥 아니 알라신 손바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각자의 이야기를 사진으로 찍어서 소통했다. 그래서 그런지 앙카라 괵한의 집과 자동차와 음식들이 내 일상의 문화처럼 느껴져 버렸다. 괵한의 집은 너무도 근사했다. 3층짜리 높은 그리스식의 하얀 벽과 빨간 지붕에 거실이 넓고 많은 방을 가지고 있었다. 유럽식 창문이 예뻤고 어머니가 만든 자수로 예쁘게 꾸며져 있었다. 주방에서 요리하시는 터키할아버지가 보였고 거실에서 쉬고 계시는 터키할머니가 보였다. 그 공간에 나의 흔적도 곳곳에 보인다. 내 전시 사진과 앨범, 내가 실렸던 신문기사까지도 한눈에 들어왔다.  

어느 날, 갑자기 괵한이 보고 싶었다. 영상통화를 눌렀다. 앙카라의 오전, 괵한은 자신의 현관에 예쁜 커튼을 달고 있다가 나의 전화를 받는다. 무슨 남자가 전화를 받자마자 저리 우는가! 두 눈이 뻘겋게 되더니 연신 눈물을 닦아낸다. 이곳에서 입고 있던 옅은 민트색 셔츠를 입고 있었다. “괵한, 왜 거기 있어? 밥 먹을 시간이야. 빨리 밥 줘” 장난기가 발동했고, 괵한은 당장이라도 달려와서 밥상을 차리고 싶은가 보다. 지중해가 펼쳐져 있는 터키, 알라딘의 양탄자가 나는 동화 같은 나라가 매일 영상통화로 서울보다 더 가까워져 버렸다. 

괵한과 내가 어떻게 영상통화가 되느냐고 모두가 물었다. 괵한이 터키어로 물어오면 나는 한국어로 대답하고, 내가 한국어로 물으면 괵한은 터키어로 대답한다. 무슨 뜻인지 전혀 알 수 없다. 서로가 동문서답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냥, 그저 서로가 알고 싶은 걸 물어 보았을 뿐이고 서로가 듣고 싶은 걸 이해했을 것이다. 나는 이것을 “제3국의 언어”라 자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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