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군수가 각자의 관인을 걸어놓고 회의한 곳”
기존 유래에 문제제기 하고 나선 오두환 씨
“선대가 예수마을에 살 때 조성한 숲에서 이름 유래”
호구장 등 관련 자료 제시하며 주장···진실은 무엇?

▲ 사천시 정동면 예수리에 있는 오인숲의 이름과 관련해 새로운 주장이 제기돼 흥미롭다. 예수마을이 한때 해주 오씨의 집성촌일 당시 조성된 숲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다.

[뉴스사천=하병주 기자] 사천시 정동면 예수리 예수마을에 가면 들판 한가운데 작은 숲이 하나 있다. 근처 들녘에서 일을 하는 농부들에겐 땀 식히기에 알맞고, 사천강을 따라 산책하는 이들에겐 잠시 쉬어가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요즘은 음식을 준비해 소모임을 즐기는 사람들도 보이고, 아예 텐트를 치고 야영하는 이들까지 있으니, 이래저래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숲이라 할만하다.

이 숲의 이름은 오인숲이다. 예수마을 사람들도 오래 전부터 오인숲이라 불렀다고 하니, 이 이름에 토를 달 일은 없겠다. 하지만 오인숲의 유래와 그에 따른 한자표기까지 따져든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지금껏 알려진 바로는 오인(五印)숲이어야 마땅하나 그게 아니라 오인(吳人)숲이라는 주장이다.

이름을 吳人숲이라 주장하는 이는 오두환(72) 씨다. 그는 사남면 용두마을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을 사천에서 보내고 지금은 김해시에 살고 있다. 오래 전부터 정동면지, 사천군지 등에 오인숲에 관한 유래가 적힌 것을 보고는, 자신의 문중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와 다름을 알았지만 반박할 객관적 근거가 약해 나서지 못했단다. 이에 지난 10년간 관련 자료를 찾아 다녔고, 그 결과를 들고 최근 적극적인 주장에 나섰다.

오 씨의 주장을 살피기에 앞서 정동면지에 소개된 오인숲의 기존 유래를 먼저 살펴보자.

“예수숲을 오늘날 ‘오인숲’이란 일컫게 된 까닭은 다음의 일화에서 비롯되었다. 즉 구한말 때인 1901년경을 전후하여 사천군수 윤순백(尹順伯)이 당시 일제의 침략야욕이 우리나라에 뻗치게 되자 기울어 가는 국운(國運)을 근심한 나머지 그의 주선으로 인근 고을인 진주, 곤양, 단성, 고성 등 4개 군의 관장(官長)을 초빙하여 각기 지니고 온 인신(印信=인장 또는 관인)을 이 숲속 나뭇가지에 걸어놓고 수령(守令)으로서의 당면과제를 서로 진지하게 의논한 곳이라 하여 후일 오인(五印)숲이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 오두환 씨가 9월 6일 오인숲에서 기존 안내판 내용에 잘못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 내용은 오인숲 현장 안내판에서도 소개하고 있으니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유래의 신빙성이다. 사천군수 윤순백이 자신보다 급이 높은 진주 관장을 초빙했다는 대목이나 인신 즉 관인을 몸에 지니고 와 나뭇가지에 걸었다는 게 설득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이 시기에도 관인을 관청 바깥으로 잘 가져나가지 않았거니와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니고선 대체로 수결 즉 글씨로 서명했다는 게 통설이다.

오 씨 역시 이런 주장에 힘을 보태면서 지금까지와 다른 오인숲 유래를 주장하는 셈이다. 그는 지난 6일 오인숲을 직접 찾아 吳人숲의 근거를 설명했다. 이 자리엔 사천시 관계자도 참석했다. 이날 오 씨의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편의상 인물 존칭은 생략한다.

“오응정(吳應貞)이 정유재란 이듬해인 1598년 사천전투에 참전했다가 사천에 눌러 살았다. 처음 정착한 곳이 바로 예수마을이며, 이곳에서 200년 가까이 집성촌을 이루고 거주했다. 그리고 숲은 비보(裨補) 차원에서 당시부터 가꿨던 것이다. 특히 오응정의 아들 대훈(大勳)이 마을입구에 정자나무를 심어 오정자(吳亭子)로 불리어 왔다는 기록과 구전이 내려온다.”

예로부터 특정 성씨를 가진 사람이 나무를 심거나 정자를 지을 경우, 마을사람들은 그 나무나 정자에 성씨를 붙여 부르곤 했는데, 오인숲 역시 그와 같은 연유로 불리었단 주장이다.

이와 관련해 오 씨는 “무슨 사연인지 정확히는 모르나 200여 년 전 조상들이 예수마을을 떠났기에 후손들도 마을을 잊고 있었다”며 “그럼에도 예수마을이 첫 정착지였다는 얘기는 알고 있었기에 오인숲이 선대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다고 무턱대고 주장할 수는 없어서 근거를 찾아 나섰는데, 선대의 호구장(戶口帳)을 발견하면서 이제는 말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호구장(戶口帳)이란 3년 단위로 인구조사를 해 기록하던 문서로 1부는 관청에, 1부는 신고 당사자가 보관했다. 오 씨는 자신의 선대 중 6대가 ‘사천현 내상주면 여수개리’에 살았음을 입증하는 호구장 자료를 참석자들에게 공개하기도 했다. 여수개리는 지금의 예수리다.

오 씨는 이런 자료를 근거로 지난해부터 오인숲 명칭에 이의제기를 하고 있음에도 시가 받아들여주지 않고 있다며 섭섭함을 드러냈다. 그는 “내 주장이 무조건 맞다고 하진 않겠다”며 “하지만 기존 五印숲 얘긴 너무 소설 같은 얘기다. 그러니 내 주장도 하나의 유력한 설로서 받아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에 사천시 관계자는 “기존의 유래 역시 하나의 설이기에 덧붙이는 건 어렵지 않다”면서도 “충분히 검토해서 관련 책자 발간 등 특별한 계기가 있을 때 반영토록 노력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예수숲의 다른 이름 오인숲. 그 유래가 처음 소개된 건 1966년 정동면지에서다. 그리고 이에 대한 다른 생각이 53년 만에 새롭게 나왔다. 어느 쪽이 진실에 더 가까울 지 상상의 나래를 펴는 일도 재밌겠다. (※뉴스사천은 오인숲과 관련한 다른 주장이나 제보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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