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멋(글씨 순원, 새김 괵한). 30×25. 2019.

“도대체 괵한은 뭐 하는 사람이야! 내가 단단히 일렀어. 한국에서 전시했던 작품들을  나눠 들고 비행기를 타야 하니 빈손으로 서울 올라와야 한다고... 그런데 기내로 들고 들어갈 짐이 손에 있다고?” 

괵한을 떠나보내는 삼천포 시외버스터미널 안, 함께 터키로 돌아갈 언니 부부에게 서울 버스 도착 시간을 알려 주려 전화를 하던 중이었다. 괵한은 공항에서 화물로 보낼 30kg 여행용 가방과 함께 5kg을 더 손에 쥐고 내 앞에 서있다. 우체국에서 터키로 항공택배를 보내고, 나머지 직접 들고 갈 짐 무게를 정확하게 확인하고 오는 길이다. 그래서 괵한의 여행용 가방의 무게와 기내로 들고 들어갈 5kg을 나는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당황스러워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금 손에 들려 있는 짐이 무엇이냐고. 기내로 들고 들어가야 하는 짐이 서울에 따로 있을 것 같다며, 괵한은 자신의 손에 들린 것은 짐이 아니라고 말한다. 공항에 들어갈 때 신을 무거운 운동화며, 입고 들어갈 무거운 바지와 점퍼라고 했다. 이제 나는 상황이 정리가 되어 버렸다. 

조금 전, 우체국에 들러 따로 터키로 보내야 하는 짐을 챙겼다. 괵한의 수중에는 한국 돈 7만 원이 남아 있었다. 서울에서 택시비로 쓸 2만 원을 빼고 나머지 5만 원은 택배비라며 건네준다. 말이 통하지 않고 핸드폰도 자유롭지 못할 서울에서 혹시 모르니 비상금으로 넣어두라 하고는 내 지갑을 열었다. 그때 재빨리 괵한이 주섬주섬 무언가를 챙겼던 것이다. 무게를 조금이라도 더 줄여 보려고 몇 개의 옷가지를 챙겼다. 이곳에서 생활이 줄곧 그러했듯이 괵한은 사람의 성의를 그 이상으로 눈치채며 자신의 불편함과 노동으로 대신하곤 했다. 

짐을 미리 터키로 보냈어야 했지만 밤샘 작업하며 정신없이 바쁜 나에게 우체국 가야한다는 말을 할 수 없었나 보다. 한국말과 영어가 서툴고 핸드폰 사용이 자유롭지 못했다. 그래서 혼자서 우체국 업무를 보기에는 무리였을 것이다. 그것을 떠나는 날 알게 되었다. 

한국을 떠나기 전, 공항에서 찍은 한 장의 사진이 날아왔다. 뜨거운 한여름에 두꺼운 청색 점퍼를 입고 무거운 운동화를 신어 모자까지 눌러 쓴 모습이었다. 그동안 냉정하게 추슬러 온 심장이 한순간에 무너져내려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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