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섭의 배우며 가르치며]

▲ 송창섭 시인.

문득 ‘손’을 보았습니다. 이리저리 살피고 뒤집어 보았습니다. 조금은 떨어져 몰입하듯 한참을 뚫어지게 보았습니다. 새삼스러울 게 하나 없었습니다. 어제의 손이 분명 저와 같았고 오늘 역시 그러했으니까요. 좋은 밥 먹고 이 무슨 뚱딴지같은 짓일까, 싱거웠지요. 변함없이 팔의 끝자락에 붙어있는 손. 그러다가 느닷없는 의문이 솟구쳤습니다. ‘대체 나는 내 손을 얼마만큼 알고 있는 거야?’ 하긴 지금껏 손을 제대로 알고 손을 쓴 게 아닌데도 별 탈이 없었으니 몰라도 상관은 없겠지만 말이지요. 

국어사전을 뒤적여 손을 찾았습니다. 하나하나 읽다 보니, 우리가 손을 폭넓게 활용하는 이상으로 의미가 매우 다양했습니다. 여러 가지의 풀이와 사례들, 속담과 관용구 등이 이런 사실을 뒷받침했습니다. 놀라웠고 특별했습니다. 그 가운데에 으뜸 의미 하나를 짚었습니다. “사람의 팔목 아래에 달려 손바닥, 손등, 손가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무엇을 잡거나 만지는 데 쓰이는 몸의 한 부분.” 

손은 그 형태를 유지하고 안정성과 다양한 움직임을 위해 세부적인 구성 요소를 갖추고 있는데 그중 으뜸이 뼈입니다. 손목과 손바닥, 손가락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뼈의 마디와 마디 사이에는 관절이 있으며, 손등과 손바닥에는 혈관과 신경이 깔려 있고 근육과 힘줄, 인대가 있어 감각이 예민하며 자유로운 움직임의 바탕이 됩니다.  

밥을 먹고, 오줌 누고 똥 닦고, 그림 그리고 낙서하고, 가려운 데 긁고, 자전거와 차를 몰고, 강아지 쓰다듬고, 주먹 쥐어 허공 찌르고, 물건 들어 나르고, 꽹과리 치고, 생선 야채 다듬고, 논밭 김매기 하고, 수술하고, 가위바위보 내기하고 따위. 휴우, 손의 쓰임새를 열거하자니 끝이 없습니다. 늘 곁에 있는 것이 마땅했기에 무심히 지나쳤던 손이었습니다. 한 번도 신비로운 물체라 여긴 적이 없는 손이었습니다. 다시금 ‘손’을 보았습니다. 찌릿, 감전의 순간처럼 손의 전율을 느꼈습니다. 아무래도 손이 간직한 신비로움을 찾아 떠나야겠습니다.

팔에서 손으로 건너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할 길목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손목입니다. 손목을 지나면 두 개의 넓은 평원과 두 개의 좁다란 길이 나옵니다. 두 개의 넓은 평원은 손등과 손바닥을 말합니다. 손을 펴서 앞으로 뻗었을 때 손톱이 보이는 쪽을 손등(장배掌背)이라 하고, 손의 안쪽 곧 손등과 반대되는 쪽을 손바닥(장심掌心)이라 이릅니다. 

두 개의 좁다란 길은 손등이 위로 오도록 손을 폈을 때, 하나는 손목의 안쪽에서 엄지손가락으로 이어지는 길이요, 또 하나는 손목의 바깥쪽에서 새끼손가락으로 이어지는 길을 이릅니다. 앞의 길은 가리키는 이름이 없습니다. 주먹을 쥐고 두 손을 서로 부딪치거나 가슴과 어깨, 목덜미를 두드릴 때 쓰기에, ‘엄지’와 두드릴 때 나는 소리 ‘탁’을 묶어 ‘엄지탁’이라 하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뒤의 길은, 태권도에서 엄지손가락을 구부리고 네 손가락을 펴서 공격 자세를 취할 때, 손목 안쪽에서 새끼손가락까지를 일러 손날(수도手刀)이라고 합니다. 칼로 오이를 자르듯 벽돌을 내리치는 모습을 연상하면 되겠지요. 달리 손바닥의 가장자리를 따라 이어진 부위라 하여 장연(掌沿)이라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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